박수밀 <연암 박지원의 글짓는 법>
* 조선의 개혁적 사상가이자 출중한 문장가인 연암의 글쓰기를 오늘의 시각에서 살펴본 흥미로운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인문적 글쓰기는 요즘 시대의 화두가 되어있는데요, 생각을 어떻게 깊이있고 참신한 글로 연결시키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관심을 끄는 책이 아닌가 합니다. 연암 문장에 대한 연구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박수밀 선생님의 책입니다.
불합리한 세계와 치열하게 대결하는,
현재도 여전히 유용한 연암의 글 짓는 법
_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은 당대에 이미 문장가로서 명성이 높았지만, 이후에도 꾸준히 후배 문장가들의 흠모의 대상이었다. 특히 글쓰기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 이에겐 글쓰기의 본보기가 될 만한 문학적 스승이나 선배가 있게 마련인데, 많은 이들이 연암을 그 대상으로 지목했다.
_ 19세기의 문장가 항해(沆瀣) 홍길주(洪吉周, 1786~1841)는 글쓰기의 모범으로서 연암을 평생 흠모했다. 홍길
주는 어린 시절 연암의 처남 이재성(李在成)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생전에 연암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홍길주는 <연암집>을 처음 접하고서 마치 절경(絶景) 속으로 들어가는 황홀함을 체험했다. 이후 연암의 글은 홍길주 자신이 되었다.
_ 창강(滄江) 김택영(金澤榮, 1850~1927)은 연암의 문장은 퇴계와 율곡의 도학(道學), 충무공 이순신의 용병술과 더불어 조선의 세 가지 최고라고 하였다. 김택영은 말하길, 연암의 글은 사마천의 글을 쓰려 하면 사마천의 글을 썼고 한유나 소식의 글을 쓰려 하면 한유나 소식의 글을 썼다고 하면서 천년 역사 가운데 그 탁월함은 우리나라 문장가 중에 없었던 일이라고 했다.
_ 구한말의 문장가인 운양(雲養) 김윤식(金允植, 1835~1922)은 우리나라 문장가들이 입만 열면 성명(性命)을 말하고 성리학을 베끼는 폐단을 보였지만 오직 연암만이 여기에서 벗어났다고 칭송했다. 역대로 수많은 학자들은 연암의 문장에 매료되었고 연암을 우리시대 최고의 문장가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_ 오늘날에도 연암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의 <열하일기>는 세계 최고의 기행문으로 일컬어지며, 한 연구자는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있다면 조선에는 연암이 있다고까지 자부했다. 고전문학을 통틀어 그 작품에 대해 가장 많은 논문 편수를 보여주는 이를 꼽으라면 단연 연암이다.
_ 연암에게는 중세와 근대, 탈근대의 모습이 다양하게 섞여 있다. 연암은 ‘그때’의 구조 속에 구속되어 있으면서도 그 구조를 성찰하고 구조의 너머를 바라본다. 그는 모든 인간들이 ‘그때 저기’를 향해 갈 때 ‘지금 이곳’을 이야기하자고 한다. 지금 이곳이 과연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를 묻고 불합리한 세계와 치열하게 대결한다. 그와 같은 고심과 인문 정신은 지금 현실에서도 여전히 쓸모 있다. 그가 남긴 멋진 자산들을 지금 이곳에서 실제로 활용하기 위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그대는 신령스런 지각과 예민한 깨달음이 있다고 남에게 잘난 척하거나 사물을 업신여기지 말게. 저들이 만약 약간이라도 신령스런 깨달음이 있다면 어찌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겠으며, 저들이 만약 신령스런 지각이 없다면 잘난 척하고 업신여긴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리는 냄새나는 가죽 부대 속에 문자를 갖고 있는 것이 남들보다 조금 많은 데 불과하다네. 저기 나무에서 매미가 시끄럽게 울고 땅속에서 지렁이가 소리 내는 것이 시를 읊고 책을 읽는 소리가 아니라고 어찌 장담하겠는가?”
-「초책에게 주다」
이 책의 저자 박수밀 선생은 연암 글쓰기의 본질이 창작의 영감을 자연 사물로부터 받은 데 있다고 보고 있다. 물론 자연 사물에서 문학의 근원을 발견하려는 태도는 연암만의 생각은 아니다. 전통 성리학은 기본적으로 자연과 문학의 친연성(親緣性)을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불교, 노장 사상에도 자연과 문학, 자연과 사회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전통 성리학자들이 바라보는 자연사물은 이미 실제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도(道)가 체현된 이상향일 뿐이다. 그런데 연암이 자연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은 남다른 데가 있다. 그는 자연사물의 원리를 들어 인간과 사회의 부조리와 불합리함을 비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연암은 자연에 대해서는 창조와 변화의 공간으로 생각하지만 인간과 사회는 모순되고 병들었다고 여긴다. 그리하여 사물의 생태로부터 얻은 깨달음을 인간 사회를 고발하고 교정하는 데 활용하려 한다. 오늘날 생태에 대한 관심이 인간과 문명의 폭력성과 잔인함에 대한 반성으로 부각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연암의 자연 사물에 대한 접근 태도는 오늘날 생태 사상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바가 있다. 저자는 연암 글쓰기의 주요한 특성을 ‘생태 글쓰기’라고 명명한다. 생태 글쓰기는 오늘날 도구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글쓰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으며, 인간의 마음을 치유하고 생명을 살리는 언어의 회복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연암의 글쓰기는 전략이다
연암의 글쓰기는 진부함을 꺼린다. 연암은 평생에 걸쳐 상투적이고 진부한 표현과 단순 모방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다면 진부하지 않은 글, 판에 박히지 않은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고민은 연암의 창작 활동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문제의식이다. 그가 진부한 글쓰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글을 쓰기 위해 어떤 방침과 생각을 했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저자 : 박수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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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에서 국문학을 공부하고 동 대학원에서 <연암 박지원의 문예 미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선 후기 지성사를 중심으로 한 실학의 인문 정신과 글쓰기, 고전의 생태 정신, 동아시아 교류사에 관심 갖고 연구하고 있다. 현재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