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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의 책

조지프 스티글리츠 <불평등의 대가>

나쁜 정치가 불평등 낳는다

[출판] ‘불평등’을 키워드로 삼아 미국 자본주의 현실을 적나라하고 통렬하게 해부한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불평등의 대가>

 

 

 

 

 

 

 

 

       
“불평등은 정치 시스템 실패의 원인이자 결과다. 불평 등은 경제 시스템의 불안정을 낳고, 이 불안정은 다시 불 평등을 심화시킨다. 우리는 이러한 악순환의 소용돌이 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불평등 대부분은 정부 정책 결과

 

불평등한 세상에서 불공평하게 태어난 우리에게 ‘불평 등’이라는 단어는 별다른 공분을 자아내지 못하는 것 같 다. ‘가난은 임금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속담은 빈부 격 차가 불가피한 현상인 것처럼 읽히게 한다. 그러나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세계적 석학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학 교수는 불평등은 우연히 생겨난 불가피한 현상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의 <불평 등의 대가>(열린책들 펴냄)는, 불평등을 핵심어로 삼아 ‘미국 자본주의 현실을 적나라하고 통렬하게, 그러면서 도 학자적 엄격성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해부’한 책이다.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음은 분명 해 보인다.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부자 중에서도 최상층 의 곳간은 점점 더 늘어나는 반면, 더 가난해지는 사람 의 수는 더욱 늘어나면서 중산층은 공동화되고 있다. 지 난 30년 동안 불평등은 꾸준히 증가해왔지만, 금융위기 와 대침체를 통해 최근 몇 년 사이 불평등은 더 이상 간 과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해졌다. 이토록 불평등이 심화 된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이런 불평등은 사회에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 스티글리츠 교수는 이 책에서 불평등이 경제뿐 아니라 민주주의와 사법체계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세계화와 통화정책, 예산정책 등 정부의 각종 정책이 불평등의 심화에 어떻게 기여 해왔는지를 분석했다.

 

오늘날 존재하는 불평등의 대부분은 정부 정책, 즉 정 부가 한 일과 정부가 하지 않은 일의 결과다. 현대 경제 에서는 정부가 게임의 규칙을 결정한다. 즉 무엇이 공정 한 경쟁인지, 무엇이 경쟁을 저해하며 불법행위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정부다. 또한 정부는 조세제도와 사회복 지 지출을 통해 소득을 재분배한다. 그리고 상속세와 무 상 의무교육을 통해 부의 역학을 변화시킨다. 스티글리 츠 교수는 정부가 이런 기능을 어떤 식으로 수행하느냐 에 따라 불평등의 수준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결국 모든 문제의 핵심에는 정치가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이 다루는 것은 질투의 정치학이 아니다. 스티글 리츠 교수는 불평등이 사회에 해로운 이유는 단지 그것 이 윤리적으로 올바르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비효율적 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부유층은 상위 1%의 이익이 나머지 99%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관념을 심어주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해 중산층과 빈민층을 설득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불평등을 초래한 방식이 어떻게 경제성장을 저해 하고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있는지 명료하게 보여준다.

 

위태롭게 흔들리는 희망의 불꽃

 

불평등은 진공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장의 힘과 정치적 권모술수가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생겨난다. 우리의 정치는 오랜 기간에 걸쳐 사회의 나머 지 구성원들을 희생시키면서 상위 계층에게 이익이 되 는 방식으로 시장을 형성해왔다. 정책적 대안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경제적 불평등과 정치적 불평등이 긴 밀하게 결합돼 있는 현실에서 이 대안들이 채택될 가능 성은 과연 얼마나 될까?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희망 의 불꽃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한겨레21 964호 2013.6.10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