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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사전

이형대선생님 강좌 세미나 추천 텍스트 공지: 캉유웨이(강유위) <대동서>

<시민행성>은 강좌와 더불어 강의 이해의 심화와 공부의 지속성과 가치의연대를 공유하는 이들의 실천성을 겸비한 인문네트워크를 양성다는 취지에서 각 강좌와 관련하여 별도의 세미나를 개설합니다.

세미나의 텍스트는 참여자에 한해서 시민행성에서 책구입을 지원합니다

세미나 신청은 네이버 카페 <시민행성> http://m.cafe.naver.com/citizenplanet

(자세한 사항은 공지사항 참조)

 

 

 

 

중국의 이상사회론을 제시한 청대 최고의 정치사상서. 중국 역사상 혼란이 극도로 심했던 시대의 역대 폭정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도와 덕을 근간으로 유토피아 사상의 극치를 보여준다.

모두 10부 56조항으로 편성하여, 강유위의 박학다식한 동서고금의 역사, 사상, 풍속, 법률 등의 방대한 분야와 문제점 등을 막힘없이 서술했다. 또한 오랜 옛날부터 18세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 역사를 망라하면서 폭정과 영토 확장을 위한 전쟁 등을 인간 생활에서 어떻게 이해하고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인지를 밝혔다.

 

갑부(甲部) 인간이 세상에서 느끼는 모든 괴로움_入世界觀衆苦
을부(乙部) 국경 없이 세계를 하나로_去國界合大地
병부(丙部) 계급차별 없는 평등한 민족으로_去級界平民族
정부(丁部) 인종차별 없는 하나의 인류로_去種界同人類
무부(戊部) 남녀차별 없는 평등의 보장_去形界保獨立
기부(己部) 가족 관계가 없는 천민으로_去家界爲天民
경부(庚部) 산업간의 경계를 없애 생업을 공평하게 한다_去産界公生業
신부(辛部) 난세를 태평세로_去亂界治太平
임부(壬部) 인간과 짐승의 구별을 없애 모든 생명체를 사랑한다_去類界愛衆生
계부(癸部) 괴로움이 없는 극락의 세계로_去苦界至極樂

저자 : 강유위  

 

 

소개 :

1858년 광동성(廣東省) 남해현(南海縣)에서 태어난 강유위는 이학(理學)을 숭상하던 중류층의 학자 집안에서 자라 일찍부터 시문에 능했으며, 18세 때부터는 송학(宋學)을 위주로 한 경세치용(經世致用)의 학문을 닦았다. 한 번 과거에 낙방한 후 상해(上海)에서 서양인들의 식민정치를 보고 중국의 장래를 걱정하면서 서양 서적을 번역하기 시작하였다. 유럽의 신사조(新思潮)를 받아들이고 사학(史學).불교학(佛敎學).공양학(公羊學)을 배워 독자적인 유교 학설을 내세우고 정치적 개혁운동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였다. 『대동서』는 27세 때 완성된 초년작이지만 그의 사상적 특성이 잘 배어나 있는 저술로 중국 사상의 디딤돌이 되었다.

 

 

 

* 유토피아의 길 '엄숙주의'를 벗자

 

상황이 철학자를 만든다. 철학이란 주어진 시공적(時空的) 조건에 가장 합리적인 것이 무엇인가 따지는 것을 즐긴다. 20세기 전후 동아시아는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역시 격동기로 예외 없이 많은 사상가를 냈는데, 강유위(康有爲·1858~1927), 담사동(譚嗣同·1865~1898), 양계초(梁啓超·1873~1929)로 대표되는 사상가들이 활약하여 자신들의 철학을 제출한다.

이들을 공양사상가라 부르는데, 공양(公羊)이란 공자가 쓴 춘추에 대한 공양고(公羊高)의 해설서 ‘춘추공양전’에서 나온 말이다. 이 공양전은 역시 춘추해설서로서 좌씨전(左氏傳)이나 곡량전(穀梁傳)에 비해 역사변화의 관점에서 기술된 것으로, 중국 근현대의 사상가들에게 크게 영향을 준다.

이들 사상가들은 공자가 제창한 인(仁)이 당시 시대라면 어떤 가치로 변형되어야 유효한가를 반성한다. 특히 강유위는 ‘대동서(大同書)’를, 담사동은 ‘인학(仁學)’을 써서 정치·경제·사회·문화에 걸친 경색된 상황의 타파를 위한 해법을 유가적 관점에서 제시한다. 그러면서도 불교적 사유체계, 자본주의, 사회주의, 진화론까지도 끌어들이는 혼합주의(Syncretism)를 쓴다.

여기서 강유위의 대동서에 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필자의 한 일화를 더듬어 본다. 1980년대 여름날 필자는 선후배들과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명동의 한 음식점에서 이른바 섞어찌개로 점심을 먹었다. 그때 이것저것 마구 섞은 찌개의 맛도 좋았거니와 외설 시비를 불러일으킨 ‘벗는’ 영화도 또한 재미있었다.

강유위 주관하에 1894년 북경에서 전국 유생들과 함께 올린 상소문.

 

야하게 벗는 데다, 그것도 초등학교 5, 6학년쯤 되는 어린이가 과외 선생과 에로스에 빠지는 영화여서 그랬을까? 영화 감상이 끝난 후 한 남학생이 섞어찌개 앞에서 여학생에게 “왜 저렇게 벗는 영화를, 여자가 볼 생각을 했느냐?”고 묻자, 그녀는 대리 만족도 있는 것 아니냐고 맞장구쳤다. 실은 그런 질문은 우문이다. 사람이 감정이나 정감을 누리는 존재라는 점은 남녀가 똑같다. 그 향유에 불평등이 있어서도 안된다. 영화와 음식에서 벗거나 섞는 ‘파격’은 강유위의 대동서에 보이는 사상 표출의 양상이다. 남녀평등, 계약결혼, 오늘날의 유엔과도 같은 공정부(公政府) 설립 등 인민의 복지를 위한 청사진은 이전 경세서(經世書)에서 볼 수 없는 제안들이다. 농업생산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화장터 옆에 비료공장을 세우는 일과 노인 요양원과 육영원(고아원)의 설치를 제안하는 것은 놀랍기도 하지만 거의 현대판 버전에 가깝다. 이 ‘대동서’가 궁극적으로 던지는 메시지는 이렇다. 첫째, 잘 섞으면 좋다는 것이다. 그것이 가르침이든, 사상이든 종교든 간에 어차피 혼란스러운 세상을 구제하려는 것이라면 유교가 따로 없고 불교가 따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인민의 삶에 복지를 가져다주는 일에 순수주의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인식이다.

둘째, 인민의 욕망 충족을 염두에 두는 사회분위기로 가자는 것이다. 전통문화의 관점에서 고상한 삶의 이치만을 내세우기보다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정감(emotion)이나 느낌(feelings)을 향유하는 시스템도 소홀히 하지 말자는 것이다.

셋째, 그런데 이러한 인민의 복지 추구도 패러다임의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어제의 태양이 오늘의 태양이 아니듯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으로서 진리는 항상 변한다는 인식의 토대 위에 인간의 성취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대동이란 유교에서 말하는 유토피아다. 기독교의 천당이나 불교의 극락과 비슷하다. 이 용어는 ‘예기’의 예운(禮運) 편에 보이는데, 공자가 희망한 인(仁)이 달성된 평화로운 시대가 바로 대동세이다. 그런데 누가 이 같은 세상을 막는가? 강유위의 인식에 의하면, 전제군주와 같은 구태의연한 패러다임에 젖은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하여 경계(境界)를 만들어 인민의 욕망을 말살하는 데서 비롯한다.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시스템, 특히 전제 군주제는 국가의 테두리에서 인민의 욕망 충족의 기회를 박탈하는데, 이런 국가라면 공정부로 대체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이 책에서 전통의 가치관이나 세계관, 곧 삼강오륜이나 성리학과 같이 욕망을 지나치게 악으로 여기는 엄숙주의에 대하여 회의할 줄 아는 태도를 배우게 된다. 로고스만이 로고스가 아니어서 카오스도 로고스일 수 있으며, 합리만을 추구하다 감각이나 정감을 놓치는 문화를 반성하는 삶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1880년대에 이미 초고가 이루어진다. 그때 계약결혼 같은 획기적 제안을 담았기 때문에 양계초나 진천추(陳千秋) 같은 만목초당(萬木草堂)의 강유위 제자들로부터 절찬리에 출판 요청을 받지만, 1920년대 후반에 출판되는 우여곡절을 겪는다. 우리나라에서는 1970, 80년대 철학계에 소개되고 부분 번역되었다가 91년 대우학술총서로 완역, 출간되었다. 이번에 이화여대 이성애 명예교수가 다시 보완 번역해 출판하였는데 일독을 권한다.

경향신문 2006.10.20 이명수|성균관대 겸임교수·중국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