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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의 책

미셸 푸코 <말과 사물>

 

 

 

미셸 푸코의 [말과 사물](1966)은 푸코의 저작 가운데 가장 유명한 책이지만 이 책을 좋은 번역으로 접해볼 기회를 갖지 못한 대개의 국내 독자들에게는 꽤 당혹스러울 만한 책이다.

 

우선 이 책은 [광기의 역사](1961)의 독자들이 보기에 낯선 책이다. 푸코는 [광기의 역사]에서 데카르트의 [성찰](1641)과 광인들의 대대적인 감금(1640)이 정확히 동일한 시기에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면서, 근대의 합리성이 어떻게 광기의 배제에 기초를 두고 있는지 분석한다. 따라서 이성과 광기는 서로 대립 관계에 있으며, 해방되어야 할 것은 광기다. 반면 [말과 사물]은 더 이상 광기를 이성과 대립하는 위치에 놓고 있지 않으며, 광기의 역사가 아니라 ‘인문과학의 고고학’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일종의 합리성의 역사, 이성의 역사를 쓰려고 시도한다.

 

그런가 하면 이 책은 푸코의 또 다른 유명한 책, [감시와 처벌](1975)의 독자들에게도 상당히 낯선 책이다. 푸코 하면 권력의 이론가, 지식과 권력의 계보학자를 떠올리게 되는데, 이 책에는 규율이나 감옥, 감시에 관한 논의는 전혀 등장하지 않고, 대신 우리에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서양 르네상스(16세기)와 고전주의 시기(17-18세기)의 수많은 학자들, 문필가들의 저술에 관한 그야말로 박학다식한 논의가 종횡무진 펼쳐지기 때문이다. 푸코는 저 많은 책들을 언제 다 읽었을까? [말과 사물] 앞에서는 박식한 인문학자들마저도 평범한 교양 독자들이 떠올릴 법한 소박한 질문을 저절로 던져보게 된다.

 

하지만 [광기의 역사]와도 다르고 [감시와 처벌]과도 다른 이 책은 사실 푸코의 일관된 지적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푸코는 초기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늘 근대성의 한계를 모색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가 근대성이라고 부른 것은 대략 프랑스혁명 이후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서구 문명을 가리킨다. 이 시기의 성격과 한계를 밝히기 위해 푸코는 르네상스에서 고전주의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연속적인 진보의 노선에 따라 역사를 분석하는 기존의 역사학 방법론을 거부하고, 대신 근대와 이전 시기들 사이의 불연속성을 새롭게 고찰한다.

 

특히 [말과 사물]은 고고학이라는 새로운 역사학 방법론에 따라 근대 인문과학이 이전 시기와 다른 새로운 ‘에피스테메’의 성립을 통해 가능하게 되었음을 밝힌다. 어떤 역사적 시기에 존재하는 다양한 지적 담론들의 차이와 대립, 거리의 관계가 전개되는 장(場)을 뜻하는 에피스테메라는 개념은 근대의 합리성이 고대 그리스는 고사하고 르네상스나 고전주의 시기와도 무관한 새로운 바탕에 기반하여 성립했음을 보여준다. 인문과학의 주체이자 대상인 “인간은 최근의 발견물이자 출현한 지 두 세기도 채 안 되는 형상”(20쪽)이라는 푸코의 충격적인 주장은 이러한 탐구의 결론인 셈이다.

 

1970년대에 들어 푸코는 분석의 영역을 담론에서 비(非)담론으로 바꾸고, 고고학 대신 계보학이라는 새로운 방법론을 채택한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말과 사물]의 결론의 폐기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인간이 근대 담론만이 아니라 근대 권력의 산물이기도 하다는 것을 밝히려는 새로운 시도의 표현이다. 따라서 이 책은 그 자체로도 가치가 있지만, 푸코 사상의 연속과 불연속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건너뛸 수 없는 책이다.

 

이 책이 국내에 처음 번역ㆍ출간된 것은 1987년이었으며, 이번에 나온 책은 근 30여 년 만에 새로 번역해서 낸 책이다. 그 사이의 온축 덕분인지 아니면 역자의 능력 덕분인지, 새 번역은 이전 번역보다 훨씬 정확하고 잘 읽히는 좋은 번역이다. “선험적 감성학” 내지 “초월론적 감성학”이라고 번역하는 게 적절할 원어가 “선험적 미학”(437쪽)으로 번역되는 등 사소한 시빗거리가 없지는 않지만, [광기의 역사]와 [말과 사물] 같은 난해한 대작을 공들여 번역한 역자의 노고에 비하면 그야말로 사소한 투정에 불과하다. 푸코의 가장 유명하지만 가장 덜 알려진 이 책을 버스나 지하철에서도 읽을 수 있게 됐으니 우선 역자에게 깊이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2012. 5.5 경향신문 <명저 다시 읽기> http://blog.aladin.co.kr/balmas/5602242

 

진태원 / 철학자,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시민행성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