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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의 책

김경욱 소설 <야구란 무엇인가>

* 타협하지 않는 작가적 성실성을 경주해온 김경욱 소설가의 신간입니다. 야구와 정치-역사를 매개하고 있는 이 소설은 단지 과거의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 듯합니다. 같이 읽고 얘기해 볼 만한 소설이라고 생각되는군요.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김경욱 <야구란 무엇인가>, 문학동네, 2013

 

 

작가 김경욱 "한 세대 지나도 끝나지않은 역사, 광주"

소설가 김경욱(42)의 새 장편 '야구란 무엇인가'를 야구팬 독자가 집어들었다면 속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독자는 책을 다 읽고 났을 때 한 세대가 지났어도 광주민주화운동이 끝나지 않은 역사이며 여전히 현재임을 똑똑히 알게 될 것이다.

 

한 세대, 30년은 많은 것을 잊기 좋은 시간이다. 역사의 비극이 기록물 창고에 갇히고 30년 아니라 3년 전만 얘기해도 구닥다리처럼 여겨지는 지금. 김경욱은 광주민주화운동의 그림자에 포박당한 한 사내를 불러와 2013년 우리에게 '1980년 5월 광주'가 무엇인지 뼈아프게 묻는다.

총검을 든 자 '염소'가 말한다. 주사위를 던져서 홀수면 빨갱이고 짝수면 아니라고. 홀수면 죽는 것이고 짝수라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운명의 주사위놀이다. 주사위가 던져져 동생이 처참하게 죽고 화병이 난 아버지는 관을 세워 거꾸로 묻어달라고 유언한다. 그 후로 30년이 지나고 사내는 칼과 청산가리를 챙겨 복수의 길에 나선다.

 

작가는 "5·18을 포함해 공공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폭력에서 2차, 3차의 피해가 계속 생겨나는 걸 고민했다"면서 "국가가 억울함을 풀어주고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고 사회구성원들이 피해자들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게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결국 사내는 스스로 복수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염소'를 찾아 찔러 죽이고 자신도 청산가리를 먹고 죽으려는 사내의 등을 따라갈 때 읽는 이의 마음은 조마조마하다. 이 불법의 사적구제가 현실화돼도 걱정스럽고 이렇게라도 복수가 이뤄지지 않으면 황폐했던 사내의 삶이 너무 억울하고 한스럽다.

사내 곁에 자폐 증상이 있는 초등학생 아들이 동행한다. 맡길 데가 없어서 여차하면 같이 죽을 각오로 떠난 길에, 고집스레 제 할 말만 하고 노란색에 집착하는 아들의 생사마저 달렸다.

가슴 에이고 초조한 광주와 복수의 서사 속에서 도대체 '야구란 무엇인가'. 작은아들을 잃고서 '자신만의 타이거즈를 매일매일 소주잔에 부어 홀짝이던'(61쪽) 사내의 아버지와 패배가 두려워 9회를 볼 자신이 없으면서도 꼬박꼬박 8회까지는 보고야 마는 사내. 이들 부자에게 광주민주화운동의 상처와 해태 타이거즈의 경기는 바짝 붙어 있다.

 

작가는 말한다.

"80년대 광주 시민에게 해태 타이거즈는 단순한 야구팀 이상이었어요. 야구장에서 해태를 응원하면서 상처받고 고통스러운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응어리와 한을 해소하는 거죠. 우리가 현실에서는 패배했지만 해태는 이겨주길 바라는 거예요. 80년대 해태 응원가가 '목포의 눈물'이었는데 막 이기고 있을 때도 '목포의 눈물'을 불렀어요. 응원가로 아주 어울리는 노래는 아닌데, 이 노래에 억눌린 사람들의 한이 담겨 있었죠. 저만의 방식으로 광주를 얘기한다면 그 매개가 해태 타이거즈가 될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사내의 아들도 야구를 좋아한다. 삶이, 상처가 상속되는 것처럼 야구도 상속된다. 해결되지 않은 상처는 고스란히 다음 세대, 아들의 세대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이 암담한 상황에 작가는 잠실야구장으로 사내와 아들을 보내 아주 작은 소통의 통로를 열어준다.

"섣불리 화해와 용서를 얘기할 수는 없었어요. 사내가 살아온 30년이 암흑천지였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하겠어요. 그래도 저는 사내와 아들을 살려서 돌려보내고 싶었어요. 다른 종목들은 남의 집에 가서 싸우잖아요. 축구도 그렇고 농구도 그렇고…. 하지만 야구는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경기예요.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 그게 야구의 진실이라고 생각했어요."

 

광주 태생으로 초등학생 때 5·18을 겪은 김경욱은 작가가 되기 전부터 언젠가 '1980년 광주'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야기가 만들어질 때까지 오래 기다렸고 등단 20년이 된 올해 이 소설을 내놨다. 작가는 "그 시절의 고통과 상처를 겪지 않은, 그래서 잘 모르는 분들과 세대가 잊지 않고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더 열심히 썼다"고 했다.

 

'호랑이' 하면 진짜 호랑이만 생각나고 해태 타이거즈 생각이 나지 않는 야구 문외한 독자에게도, 야구에 인생의 정수가 담겨 있다고 믿는 야구 광팬 독자에게도 이 작품을 추천한다. 한 세대가 지나 잊힐 권리라도 취득한 것 같은 역사의 비극으로 독자를 끌어당겨서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 오래 뿌려진 눈물을 기억하게 한다.

 

<연합뉴스 2013.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