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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기획

내가 살고 싶은 나라 - 시민집담회

 

 

 

내가 살고 싶은 나라-시민행성 집담회를 개최하며

 

 

한 달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세월호 참사가 남긴 슬픔과 고통은 여전히 유가족들과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었습니다. 그냥 운이 나빠 즐거운 수학여행 날 겪게 된 작은 사고일 수 있었습니다. 온 몸이 물에 젖어 춥고 아끼는 물건이 못쓰게 돼 속상하고 구조를 기다리는 순간 잠깐 조바심을 내고 걱정하는 부모님의 목소리에 괜히 미안해지기는 해도, 그냥 아무 일도 아닐 수 있었습니다. 수학여행이 취소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 그렇게 모두 집에 돌아갈 수도 있었겠지만, 그건 그냥 살아가면서 어쩌다 한 번씩 겪는 재수 없는 일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그렇게 재수 없는 사고로 끝날 수 있었을 일이, 그냥 불운(不運)한 수학여행의 안 좋은 추억으로 끝날 수 있었을 일이, , 어쩌다 이렇게 큰 불의(不義)의 참사로 변할 수 있었을까요?

 

얼마 전 촛불집회에 나온 세월호 사고 가족대책위원회 대변인은 지금까지 한 달이 넘는 시간을 되씹어봐도 티끌만큼도 잘못한 것 없이 제 아이는 제 앞에 없고 저는 이 자리에 있다면서 아직도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 수학여행을 가기 위해 배를 탔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는 그 아이들이 왜 이토록 참혹한 불의의 희생자가 됐을까요? 한 달이 더 지났지만, 아직도, 안타깝게도, 이런 질문을 계속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의문들의 중심에는 국가에 대한 질문이 놓여 있습니다. 우리나라 헌법 제10조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인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가진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제346항에는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참사에 국가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마른 하늘의 날벼락 같이 귀여운 내 아이가 차가운 바다 속에 잠겼다는 비보를 접하고 팽목항으로 내달려온 맨 몸뚱이의 가족들과 곁에서 그들을 위로하고 보살피는 자원봉사자들, 시간이 지날수록 안타까움과 분노, 슬픔과 미안함에 눈시울을 적시며 한 달 넘도록 하루빨리 한 사람의 시신이라도 더 수습하기를 애타게 지켜보는 많은 국민들만이 있었습니다.

 

아니, 국가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구해달라는 애타는 신고를 접하고도 사태 파악을 못하고 침몰하는 배를 보고도 배 안에 갇힌 승객을 외면한 것이 국가였고, 사고 가족들의 애타는 호소와 항변이 있어야 마지못한 듯 수색작업을 전개하고 혹시 불순분자들이 섞여 있을까 수백 명의 사복 경찰을 풀어 가족들의 행태를 감시한 것이 국가였으며, 혹여 대통령에게 해가 될까, 지방선거에 피해가 갈까 언론 통제에 전력을 다한 것이 국가였습니다.

 

그러니 마치 떠밀리듯 TV 앞에 나와 최종 책임은 저에게 있다며 국민과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여러 가지 사고 예방 대책을 내놓는 대통령의 담화가 진정성 있게 들릴 리가 없습니다. 대통령이 진정으로 이번 참사에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면, 우선 이번 사고의 진상 규명을 위해 유가족과 시민이 주도하는 진상조사단을 만드는 게 일차적인 대책이 되었어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과 청와대를 포함한 정부는 이번 참사의 책임자 중 하나가 아닙니까?

 

고귀하고 무고한 어린 생명들을 속절없이 떠나보내고 새삼 들게 된 의문 중 하나는 우리에게 과연 공동의 가치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가끔 우파 쪽 학자나 지식인들을 만나면 늘 듣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좌파 쪽 사람들은 부정사관에 사로잡혀 대한민국이 얼마나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는지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6. 25 전쟁 이후 최빈국 중 하나였던 나라가 불과 수십 년만에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는데, 좌파들은 이 대단한 업적을 이룬 그동안의 정부, 기업, 엘리트 등의 노력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불만이죠.

 

아마도 그것은 대단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업적은 정부, 기업, 엘리트만이 이룬 것이 아니라, 수많은 평범한 국민들의 재능과 헌신과 열정을 동력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수십 년 동안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정언명령으로, 나라의 유일한 최고 가치로 지배해온 것과 이번 참사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을까요?

 

촛불집회에서 사고 가족대책위원회 대변인은 대한민국도 세월호처럼 침몰하고 있다. 영원히 살고 싶은 나라로, 소생시켜야 한다. 그래서 이 자리에 나온 것이다. 앞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과 함께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또 이번 참사로 딸을 잃은 유가족 중 한 분은 다음과 같이 호소한 바 있습니다. “제가 30대 때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어요. 사연 들으면서 많이 울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뒤로 제가 한 일이 없는 거에요. 10년마다 사고가 나는 나라에서 제도를 바꾸려고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아서 제가 똑같은 일을 겪었어요. 지금 SNS하면서 울고만 있는 젊은 사람들, 10년 뒤에 부모 되면 저처럼 돼요. 봉사하든 데모하든 뭐든 해야 돼요.”

 

세월호는 이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 철학자들이 말하듯 사건은 그것을 어떻게 상속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결정됩니다. 세월호의 참사가 계속 되풀이되어왔고 또 앞으로 되풀이될 또 다른 참사 중 하나로 기록될지 아니면 새로운 민주주의의 건설을 위한 출발점이 될지 그것은 살아남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이런 취지에 따라 시민행성에서는 시민들이 함께 하는 집담회를 마련했습니다. 이번 집담회는 명망 있는 지식인들이 나와서 시민 대중에게 세월호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국가란 무엇인가, 우리의 할 일은 무엇인가에 대해 강연하는 자리가 아니라, 한국이라는 정치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또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구성원들로서의 시민들, 국민 그 이상의 성원으로서의 시민들이 저마다의 의견을 밝히는 자리입니다.

 

이번 집담회의 주제는 내가 살고 싶은 나라로 잡았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우리는 늘 국가를 이미 주어져 있는 것으로, 우리에게 주민등록증을 주고 병역 의무를 주고 세금을 걷어가고 선거의 기회를 주는 어떤 것으로 여겨 왔습니다. 그것은 늘 우리 가까이에 있지만, 또한 우리가 거역할 수 없는 어떤 것으로, 우리가 감히 의문을 제기할 수 없는 어떤 것으로 우리 앞에, 우리 이전에 주어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단단한, 아마도 가장 단단한 현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우리는 자명한 것이라고 믿었던 국가, 나라가 사실은 너무나 허망한 어떤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늘 그것이 우리 곁에 있다고, 우리의 편이라고 막연히 생각해 왔지만, 사실 그것은 커다란 공백, 검은 구멍이었습니다.

 

세월호가 우리들 각자에게 질문하는 것, 우리들 각자에게 대답해보도록 호명하는 것은 바로 너희가 욕망하는 나라는 무엇인가, 너희가 원하는 나라는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만약 국가라는 것이, 나라라는 것이 정녕 검은 구멍일 뿐이라면, 우리 각자에게 남은 길은 그것을 함께 들여다보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 구멍을 함께 살펴보고, 그 구멍을 함께 나누는 것, 아마도 그것이 그 구멍을 줄이는 한 가지 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시민행성 집담회에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시민행성 운영위원 철학자 진태원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