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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행성 이야기

사물의철학 / 연필 -존재의 근원을 쥔 손

 

 

 

연필 - 존재의 근원을 쥔 손

 

길이 17.2cm의 가느다란 육각형 나무대 한가운데 지름 0.8cm의 검은 심이 박혀있다. 이게 이 사물의 전부다. 경우에 따라 심의 굵기에 아주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있지만, 더 이상 모양의 변주는 없다. 극히 단순한 사물의 모양새만큼이나 이 사물의 쓰임새는 명확하며 사용법은 간단하다. 특별한 설명도 필요 없이, 손에 쥐면 누구나 그 즉시 사용하는 게 이 사물, 연필이다.

 

어린애들에게도 연필을 쥐어주면 바로 무언가를 쓰거나 그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아이에게 ‘쓴다’와 ‘그린다’는 건 무슨 뜻인가. 그건 ‘입’에서 ‘손-글자’로, ‘눈’으로 직접 맞닥뜨린 자연을 ‘손-그림’으로 재현(representation)하는 세계로 진입한다는 뜻 아닌가. 글자건 그림이건 간에 연필이 재현하는 세계는 더 이상 ‘자연’ 그대로의 세계가 아니다. 동양 사람들은 ‘문화(文化)’란 말을 ‘글자로 된 세계’라는 뜻으로 새겼다. 그런 점에서 연필은 자연인으로서 태어난 어린애가 문화적 존재가 되는 과정에서 만나는 최초이자 가장 중요한 문명의 사물이다.

 

물론 대체로 도시 아이들의 연필이 ‘토이스토리’의 인형과 같은 운명을 겪는 건 사실이다. 아이가 손에 쥐었던 최초의 문명의 도구는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면서 샤프나 볼펜이나 만년필 등으로 바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대생들의 데생과 크로키에 샤프나 만년필이 사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내 짐작으로는 미래에도 이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 같다.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강의노트를 작성하는 내 필통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도 연필들이다. 정신을 집중한 독서 속의 메모, 예민한 감각과 첨예한 사유를 동원해야 하는 원고노트와 강의노트에서 난 어김없이 샤프나 볼펜이 아니라 연필을 사용한다. 이 상황에서 생각을 매개하는 손은 샤프나 볼펜의 매끈한 감촉을 아주 싫어한다. 왜일까.

 

이 단순한 사물의 신기한 구성물이 수상하다. 몸통은 나무다. 한가운데에 박힌 검은 심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순수한 흑연이 아니다. 흑연은 70% 정도고 30%는 진흙이다. 광물과 땅을 빚고, 그걸 불과 뜨거운 공기에 구워 만든 ‘토기’가 바로 연필심이다.

최초의 과학자였던 이오니아의 자연철학자들은 ‘물·불·흙·공기’를 우주의 기본원소라고 이해했다. 어쩌면 연필을 쥔 손은 머리보다도 먼저 우주의 기본원소들과 접촉하는 느낌을 아는 게 아닐까. 첨예한 사유와 예술은 ‘문명’을 무너뜨리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그건 존재의 근원과 만나는 예감이기도 하다. 역설적으로 여기에서 정초되는 건 자연이 아니라 전위의 ‘문화’다.

 

함돈균 문학평론가 / 매일경제신문 2013.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