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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행성 이야기

<붓다에게 묻다> 조성택 교수님 한국사회갈등에 대해 한겨레 신문에 답하다

 

 

논쟁을 대화로 이끄는 기술, 화쟁사상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

 

 


 

 

지금 우리 사회는 다양한 갈등과 분쟁의 현장이다. 이제 ‘밀양’은 더이상 지역명이 아니라 분쟁과 갈등의 대명사가 되었다. ‘강정마을’ ‘용산’ 다 마찬가지다. 그런가 하면 ‘천안함’ ‘국가정보원’ ‘채동욱’ 등의 고유명사는 이 나라 국민을 좌우로 가르는 리트머스시험지가 되고 있다. 리트머스시험지가 빨강과 파랑 두가지 색깔이듯 이들의 이름을 통해 우리는 좌우로 구분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사회통합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국민의 화합을 외친다. 그럼에도 불신의 골은 더 깊어가고 해결의 실마리는 찾을 수 없다. 우리 사회에는 논쟁만 있을 뿐 대화가 없기 때문이다.

 

논쟁은 대화가 아니다. 논쟁과 대화는 다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논쟁을 대화라고 착각하고 있다. 논쟁은 건강한 사회의 징표다. 현안을 두고 서로 다른 의견을 논리적으로 개진하고 상대방 의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한 민주적인 절차다. 그러나 논쟁이 단지 논쟁으로 끝난다면 현안을 해결하거나 갈등을 해소할 수 없다. 논쟁이 대화로 이어져야 한다. 논쟁은 대화를 위한 전 단계일 뿐이다.

 

원효(617~686)의 화쟁 사상은 논쟁을 대화로 이어가는 대화의 철학을 담고 있다. 화쟁은 말 그대로 다툼을 조화롭게 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지만 서로 다른 관점과 주장들을 절충하거나 묶어서 하나로 만드는 것이 화쟁은 아니다. 화쟁은 차이를 어울리게 하는 것이다. 화쟁은 조화의 과정이며, 이는 곧 대화의 과정이기도 하다.

 

원효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 비유를 통해 우리 모두가 장님이라는 인간의 실존적 상황을 전제한다. 몇명의 장님이 코끼리를 묘사한다. 코를 만진 어떤 이는 ‘코끼리는 길다’고 한다. 배를 만진 사람은 ‘벽과 같다’고 하고, 다리를 만진 이는 ‘기둥같이 생겼다’고 한다. 장님들의 서로 다른 주장에 대해 원효는 “모두 옳다”(개시·皆是)고 한다. 비록 부분적이긴 하지만 코끼리가 아닌 다른 것을 언급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효는 “모두 틀렸다”(개비·皆非)고도 한다. 어느 누구도 코끼리의 전모를 묘사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비유에서 중요한 것은 ‘모두’(皆)라고 하는 동시적 상황이다. 옳다면 모두 옳고, 틀렸다면 모두 틀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개시개비’는 어떤 입장도 전적으로 옳거나 전적으로 그른 것은 아니며, 각각의 주장이 부분적 진리성을 가지고 있는 만큼 모두가 함께 부정되거나 긍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코끼리에 대한 다양한 주장을 펴는 것이 논쟁의 상황이라면 개시개비는 대화의 상황이다. 논쟁은 내 주장이 옳고 상대방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화는 상대방의 옳음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논쟁의 미덕이 확신이라면 대화의 미덕은 겸손과 경청이다. 이는 상대방의 눈에 비친 나를 보는 과정이며 상대방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과정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진리는 더 큰 진리의 한조각일 뿐이라는 겸허한 태도를 가지고 상대방의 주장에 마음을 열 때 우리는 코끼리의 전모를 좀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화쟁이며 곧 대화의 과정이다.

 

대화가 이루어질 때 갈등과 분쟁은 문제적 상황이 아니라 진리를 드러내는 에너지이며 진리를 확인하는 기회가 된다. 갈등과 분쟁이 한 사회가 성장하는 원천이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제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논쟁만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이 논쟁을 대화로 이어갈 것인지.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  [한겨레신문]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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