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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의 책

시민행성 제1회 열린 독서 "홀" 초대작가 문학평론가 황현산선생님 인터뷰

“현실을 몰라도, 현실을 받아쓰기해도 바보 작가”

 

 

젊은 시인·소설가들 사이에 일종의 ‘팬덤’을 일으키고 있는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의 원로 평론가 황현산은 “남보다 문단에 늦게 나왔기 때문에 창비나 문지 어느 한쪽에 속하지 않고 독립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한겨레가 만난 사람]
‘밤이 선생이다’ 산문집으로 인기작가 된 황현산 평론가

난해하고 소란스러운 ‘미래파’ 시들에 대해 문단 안팎에서 수상쩍은 시선이 쏟아지던 2000년대 중반, 중견 평론가 황현산은 ‘‘완전소중’ 시코쿠’라는 평론을 계간 <창작과비평>에 발표하면서 미래파의 든든한 후견인으로 나섰다. <여장남자 시코쿠>라는 전위적인 시집으로 미래파의 대표 주자로 떠오른 황병승의 시 세계를 적극 옹호하는 글이었다.

얼마 전 출간한 생애 첫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가 최근 젊은 문인들 사이에 ‘필독서’로 회자되면서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에게는 ‘완전소중 황현산’이라는 별칭이 따라붙었다. <한겨레>와 <국민일보>에 쓴 칼럼과 강운구와 구본창의 사진에 관해 쓴 산문 등을 모은 이 책은 6월 말에 나온 뒤 지금까지 4쇄를 찍으며 산문집으로는 이례적일 정도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산문집 출간 이후 그는 신문 및 잡지 인터뷰와 방송 출연, 독자와의 만남 행사 등으로 웬만한 시인·소설가 못지않게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8월12일 오후 서울 인사동의 한 음식점에서 그를 만나 시와 문학에 대해, 그리고 상상력과 현실의 관계 등에 관해 말을 들어 보았다. 시인 겸 소설가 김선재, 소설가 황현진, 시인 안희연 등이 ‘팬으로서’ 동석했다.

인터뷰/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본업인 평론집에 비해 산문집에 독자들이 더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 혹시 서운하지는 않나?

“역시 비평보다는 산문을 읽는 독자들이 많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독자들 사이에 비평집은 거의 문단 내의 일로 치부되는 반면 산문집은 사회 전체의 관심사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문학의 사회적 영향력이 그만큼 줄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서운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산문집이 문학과 바깥 사회를 매개하는 구실을 하는 것 같아 그나마 다행스럽다는 생각도 든다.”

 

-‘밤이 선생이다’라는 제목은 어떤 의미를 담은 것인가?

“‘밤은 선생이다’라는 문장이 단순히 밤의 신분을 말해 준다면, ‘이’라는 주격조사는 전혀 다른 뉘앙스를 지닌다.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오직 밤만이 선생이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낮이 논리와 이성, 합리성의 시간이라면 밤은 직관과 성찰과 명상의 세계, 의견을 종합하거나 이미 있던 의견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좋은 시간이라는 뜻을 담고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글 쓰는 작업을 낮보다는 밤에 주로 하는 쪽이기도 하다.”

그는 보통 오전 6시에 잠자리에 들었다가 정오가 조금 넘은 시각에 일어난다. 요즘은 좀 당겨져서 오전 4~10시 수면 리듬을 지키고 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출판사 편집장으로 밥벌이를 하던 시절에는 차마 그럴 수 없었지만, 1980년대 초 대학 강단에 서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줄곧 이런 패턴을 지켜오고 있다.

 

“낮에는 주로 책을 읽거나 사무를 보지 않으면 주변 환경을 정리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다. 밤에도 초저녁에는 대개 책을 읽고, 자정이 넘어서야 비로소 글을 쓰게 된다. 그때쯤이면 사방이 조용하고 바깥으로부터의 간섭도 없어지기 때문에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려대 불문과에서 정년퇴직(2010년 8월 말)했는데, 퇴직 이후 자유로워진 상황에서 특히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나 자신은 평론이나 칼럼보다는 번역이 내 본업이라 생각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 상징주의에서 초현실주의까지의 중요하고도 난해한 문헌들을 정확하게 번역하고 풍부하게 주석을 다는 게 내가 가장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로서는 여기에 전력을 투구하고 싶은데, 비평이니 칼럼이니 시집 해설이니 하는 일들 때문에 온전히 집중하기가 어렵다. 사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문인들은 서운해하기도 한다.(웃음)”

황현산은 비평집 <잘 표현된 불행>과 비슷한 무렵에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을 방대한 주석을 곁들여 번역해 낸 것을 비롯해 스테판 말라르메의 <시집>, 기욤 아폴리네르의 <알코올>, 드니 디드로의 <라모의 조카> 등의 명번역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동료 및 후배 불문학자들과 함께 보들레르 전집을 내기로 하고 산문시와 <악의 꽃>을 맡아 작업하고 있으며, 이밖에도 랭보 전집과 로트레아몽 전집, 말라르메 전집 등을 혼자서 또는 협업으로 번역해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비평 작업이라는 현장이 없다면 프랑스 문학을 번역할 이유가 없고, 비평에서 길러진 감각이 거꾸로 번역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사실 번역과 비평은 안팎의 관계”라고 그는 덧붙였다.

 

-프랑스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에 그토록 매달리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들은 우리 문학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는 얼굴 가린 귀신과 같아서 괜히 사람들을 겁먹고 주눅들게 만든다. 한국 문학이 모종의 서구 콤플렉스를 벗어버리려면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를 밑바닥까지 파헤쳐야 한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일차 텍스트를 온전하고 정확하게 우리말로 갖추어 놓을 필요가 있다.”

 

대놓고 정치적이진 않되

본질적으론 정치적 글을 써라
작지만 오래 영향을 줘서
사람을 바꿀수 있어야 문학이다

미래파 시인들 난해하다지만
언어를 변혁한다는 것은
사회를 변혁하는 것과 같다
용산사태때 열심히 싸운 그들이
그 믿음을 입증해 주었다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는 일반인들은 물론 전문 문인들에게도 까다롭고 부담스럽게 다가오는 것 같다. 그 세계를 조금 쉽게 풀어 설명해 준다면?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 눈에 보이는 것 바깥에 다른 세계가 있다는 생각이 바로 상징주의다. 그런데 우리는 그 다른 세계를 눈에 보이는 것을 통해서만 알 수 있을 뿐이다. 보이는 것으로써 그 너머의 것을 봐야 하는 데에서 오는 난해함이 상징주의의 까다로움이다. 감각이 실제로는 그 다른 세계 자체라는 것이 상징주의의 핵심이다. 그리고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과 결합시켜서 그것을 확대하고 극단으로 밀고 나간 게 초현실주의다. 이런 것을 정확하게 알려주면 상징주의니 초현실주의에 지레 겁먹을 필요가 없어진다.”

전쟁 무렵 가족과 함께 목포 앞 다도해 중 한 섬인 비금도로 들어가 그곳에서 성장한 그는 초등학생 때부터 고교생 대상 문학잡지인 <학원>에서 도피처를 찾는 조숙한 아이였다. 목포에서 보낸 고교 시절에 접한 중역판 랭보 시집은 그에게 “모르긴 해도 언어가 지닌 마술 같은 힘을 느끼게” 했다. 역시 고교 시절 목포에서 김지하·최하림 등이 무대에 올린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본 경험도 “고달픈 현실이지만 적어도 ‘문학’이라는 탈출구는 있다”는 생각을 그에게 심어 주었다. 국문학과 진학을 염두에 두었던 그에게 “세로 글쓰기의 세계와 가로 글쓰기의 세계가 다르다”며 외국문학과 진학을 권유했던 선생님의 조언이 나중의 불문학자 황현산을 가능하게 했다.

 

-평론가로서 데뷔도 남들에 비하면 한참 늦었는데?

“출판사 편집장을 하면서 대학원을 다니고 결국 대학에 자리를 잡게 되었지만, 학위논문을 마칠 때까지는 다른 글을 쓸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다행히 사십대 중반에 정식 등단 과정 없이 평론 성격의 글을 발표하면서 평론가로 행세하기 시작했다. 일단 나오고 나면 전심전력을 다해야 하는 게 이 세계다. 더구나 나처럼 늦게 시작한 사람은 ‘젊음’을 핑계 대고 어수룩한 글을 쓸 수도 없는 처지다. 돌이켜 보면 비평가로 나와서 처음 3~4년 동안 쓴 글들이 나로서는 가장 공력을 들였고 따라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은 것들이었다.”

 

-독자에게 불친절하고 거칠다고 비판받는 ‘미래파’ 시인들을 적극 옹호하면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미래파의 문학사적 위치와 의미를 어떻게 볼 수 있나?

“1980년대까지는 가장 훌륭한 재능들이 정치시를 썼다. 암울한 시대 상황이 그것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시대가 바뀌고 시 내부에서도 정치시가 힘과 영감을 잃은 뒤, 정치시를 쓰던 이들이 전원시를 쓰기 시작했다. 농촌 현실에 대한 관심이니 생태주의 담론이니로 합리화하면서 마치 그것이 정치시의 연장인 척했지만, 사실은 농경적 정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들이었다. 그런 상황을 뚫고 나온 게 황병승, 강정, 김경주, 김이듬 같은 젊은 시인들의 시였다. 이들은 사회를 변혁시키는 것과 언어를 변혁시키는 것이 같다는 것, 언어가 가진 힘을 이동시키는 것이 사회의 힘을 이동시키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걸 증명했다. 용산사태 때 누구보다 이들이 가장 열심히 싸웠다는 사실이 그들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해 주었다.”

 

-<밤이 선생이다>에서 미학적 감수성과 정치적 감수성을 일치시키고자 노력하는 면모가 인상적이었다. 현실에서 그 둘은 어떻게 하나로 연결될 수 있나?

“미학적이든 윤리적이든 절대적으로 완벽한 세계를 상정하고 환각으로서 그 세계를 보여주는 게 바로 시다. 그런데 그 환각은 환각으로서 그치는 게 아니라 현실에 대한 구체적 실천명령이 된다. 우리가 완벽하고 찬란한 어떤 것을 상상하는 것은 그런 것이 물질과 현실 속에 이미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유물론자다. 일단 아름답고 완벽한 세계를 보고 나면, 현실에서 벽에 부닥치고 실패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그런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꿈이 있기 때문이다. 신비주의자 같은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머릿속으로 생각한 것은 설사 밖으로 표현되지 않아도 어떤 식으로든 세상사에 영향을 끼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 건 이미 세상에 그런 물질적 기반이 조성돼 있기 때문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최근 문단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의 정치성 논의 또는 문학과 현실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내 얘기를 하자면, 나는 가난한 농촌과 도시 변두리에서 컸기 때문에 늘 그런 현실에서 탈출하려 애썼지만 시민으로서 그런 현실을 모른다는 것은 바보라 생각한다. 또한 동시에 그 현실에 붙들려서 아무 전망도 세우지 못하는 것 역시 우둔한 짓이다. 나는 정치·사회 현실에 무지하거나 무관심한 문인을 경멸한다. 그렇지만 나는 젊은 작가들에게 결코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작품을 쓰지는 말라고 조언한다. 그 과정에서 그가 지닌 문학적 힘을 소진시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현실에서는 구체적으로 정치적이어야 하지만, 작품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라 함은 인간 존재의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작지만 오래 영향을 주어서 인간 자체를 바꿔 놓는 것을 말한다. 문학의 역할이 바로 그런 것이다.”

 

한겨레신문 2013.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