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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행성 이야기

<사물의 철학> 자전거의 바퀴살은 왜 비어 있을까

 

 

 

꽃샘추위가 반짝 기승을 부렸지만 봄을 기다리는 마음까지 막을 수는 없다.

  도시의 낯빛은 새로운 계절의 바람 냄새와 햇살을 느끼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자전거들로 인해서도 화려하게 변한다. 거리를 달리는 자전거를 볼 때마다 인간이 만든 가장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기하학의 기술적 구현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전체를 이루는 뼈대와 타이어와 톱니 체인이 맞물려 생기는 움직임은 점과 직선과 삼각형과 원이 협력하여 만드는 기하학의 율동이다. 유클리드 기하학의 공리와 삼각형에 대한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보이지 않는 그 추상적인 원리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저 사물의 경쾌한 운동을 지속시키는 원동력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의 기반이며, 점은 선의, 선은 원과 삼각형의, 평면은 입체와 운동의 근거다.

  노자(老子)는 `쓸모없음(無用)의 쓸모 있음(用)`을 가르치면서 사발을 예로 들었다. 사발의 움푹 파인 곳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담을 수 있는 가능성이 내재해 있다. 스피노자나 아감벤 같은 서양 철학자라면 `잠재성(potentia)`이라고 했을 이 빈 곳을, 노자는 `무(無)`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 가능성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자전거의 형상을 가장 아름답게 만드는 요소인 자전거의 바퀴살을 보노라면 노자의 `무`가 떠오르곤 한다.

  자전거의 바퀴살에서 살 자체가 아니라 살 사이에 `존재`하는 `아무것도 아닌` 빈 곳이 더 도드라져 보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물의 물리적 일부분이 보이지 않는 비물리적 여백을 더 또렷하게 드러내는 경우로, 자전거의 바퀴살만 한 게 흔치 않을 듯하다. 공학적으로 따지면야 쇠로 만든 바퀴살이 자전거를 지탱하는 물리적 축일 것이다. 그러나 왠지 이 단순한 기하학적 사물을 경쾌하게 운동시키는 근거가 오히려 이 바퀴살 사이의 `무`가 아닌가 여겨진다.

  하이데거는 "존재에는 그 나름의 역사적 운명(Geschick)이란 게 있다"고 말한다.사물(존재자)의 형상과 의미는 시대의 존재 상황을 드러내는 식으로 나타난다는 의미다. 혼자서 타고, 자기 발로만 움직일 수 있으며, 어디든 갈 수 있고, 빠른 속도로 오직 앞으로만 달릴 수 있도록 만든 자전거. 개인주의와 평등, 자유, 진보와 같은 19세기 계몽주의ㆍ시민혁명ㆍ산업사회의 탁월한 발명품의 하나로 출현했다. 이제 21세기다. 다시 부는 자전거 열풍은 혹시 이 기하학적 사물이 이젠 `다른 존재`로 우리 곁에 다가왔다는 징후는 아닐까.

함돈균, 문학평론가,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매일경제신문 2013.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