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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행성 이야기

남자의 양말 - 고른 것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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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양말 - 고른 것은 누구일까

 

여자에게 스타킹은 제2의 `피부`다. 그렇다면 양말은 남자에게 무엇일까.

장기 불황의 여파는 초미니스커트의 대유행에 이어 남자의 바지 길이마저 발목 위로 올라가게 하고 있다. 그러자 오랫동안 망각되었던 남자의 패션(?) 지대가 공개되기 시작했다. 신발 속에, 바지 밑단에 가려졌던 양말이 그것이다.

양말은 바지 밑단 속으로 은폐하거나 무채색으로 튀지 않게 해야 하는 억압의 사물이었다. 그러나 최근 도시남의 발 주위를 관찰해 보라. 발등에 바이올렛이 피었고, 발목에 무지개가 뜨고 있으며, 알록달록한 물방울이 복숭아 뼈 주위에서 보글거리고 있다. 이제 양말은 신는 게 아니라 `입는` 사물이다. 이 현상을 단지 불황의 소비심리학이 아니라 사회적 징후로 보는 일도 충분히 가능하다. 사적인 삶의 그늘이 남김없이 공개되어 가는 세상 추세의 한 반영으로 말이다.

한 TV 드라마를 보았다. 초식남은 초식남의 양말을, 상남자는 상남자의 양말을 `입고` 있었다. 다른 양말 스타일은 그들의 성격과 세계관을 구별하여 보여주는 듯했다. 그러나 거꾸로 물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상남자가 자신에게 맞는 양말을 골랐을까, 아니면 `상남자스러운` 양말이 그를 상남자로 만들었을까(보이게 할까).

20세기의 큰 지적 스캔들 중에 `구조주의`라는 이론이 있다. 주체(사람)가 사물들의 질서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사물들의 질서 속에서 주체가 그에 맞는 행위와 사고방식을 `연기`(만든다)한다는 이론이다. 양말과 구조주의? 이 연상 과정이 전적으로 터무니없는 것만은 아니다.

한국 남자들의 농담에 예비군복을 입는 순간 모두 `짐승`이 된다는 얘기가 있다. 정돈된 슈트를 입은 날은 반대로 `인간`(신사)이 된다. 그러나 무지개 양말과 물방울 양말을 신어 본 댄디남이라면, 이 이론은 양말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대번에 알 것이다. 다만 이 경우는 더 무의식적인 형태의 신체 기율로 각인된다.

 

실은 양말이 감싸고 있는 발이 신체의 바닥, 정신(머리)에서 가장 먼 곳에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실은 이 사물이야말로 당신의 발걸음을 제어하는 무의식적인 `가이드라인`일 수도 있다. 길의 동선을 순전히 당신이 선택했다고 생각하는가. 궁금하다면 어제까지 신던 무채색 신사양말을 벗고, 무지갯빛 양말을 `입어` 보라. 트랜스포머가 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할 수도 있다.

[함돈균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매일경제신문 2013.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