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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행성 이야기

시민행성 가을강좌 <지혜사전-연암의 생각에서 생각을 얻다> 박수밀 교수님 인터뷰

 

"자각과 각성의 글이 필요"《연암 박지원의 글짓는 법》박수밀 인터뷰

《열하일기》로 유명한 연암 박지원은 조선을 대표하는 문장가 중 한 사람이다. 새롭고 파격적인 형식과 날카로운 주제의식, 탁월한 표현력을 가진 연암의 글은 18세기의 보수화된 조선 사회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문체를 어지럽힌다’는 보수층의 비난을 정통으로 받으면서도 한편에서는 조선 최고의 문장가로 기려졌다.


오늘날에도 연암의 글은 여전히 찬탄의 대상이다. 고미숙 작가는 <열하일기>를 "조선 시대 최고의 기행기"라고 평했고 박희병 교수는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있다면 한국에는 박지원이 있다"고까지 말했다. 실제로 연암이 시도했던 글쓰기 전략은 비단 조선시대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신선함을 잃지 않는다. 글의 첫 머리에서부터 과감하게 논쟁을 촉발시키는 도발적인 화법, 시시콜콜한 설명 대신 장면에 초점을 맞추는 이야기 전개, 까마귀 깃에서 다채로운 색을 찾아내고 울음에서 통쾌함을 끄집어내는 등 사물의 관습적인 이미지를 벗어나는 자유로운 표현력은 오늘날에도 쉽게 쓰이기 어려운 참신한 글쓰기 방법들이다.

 

 


20년 동안 연암 박지원을 연구해 온 한양대학교동아시아문화연구소 박수밀 교수는 이런 연암의 글이 글을 잘 쓰고자 하는 현대인들에게도 훌륭한 본보기가 된다고 말한다. 그의 책 《연암 박지원의 글짓는 법(돌베개)》는 연암의 글을 ‘글쓰기 전략’이라는 관점에서 다각도로 분석한 책이다. 세부적인 표현 요령이나 주제의식은 물론 글을 대하는 기본 정신, 글 쓰는 사람이 가져야 할 세계관과 문제의식까지 두루 다루고 있다.


깊지만 차근차근한 박 교수의 책을 읽노라면 깨달음도 찾아오고 궁금증도 생긴다. 특정 지식인들만이 한자로 글을 나누던 옛날부터 SNS로 쪽글이 날아다니는 오늘날까지 변하지 않고 적용될 수 있는 ‘좋은 글’의 비결이 과연 존재할까? 존재한다면 대체 그 비결은 무엇일까? 홍대의 한 카페에서 박수밀 교수를 만나 ‘조선 최고의 문장가’ 박지원과 그의 글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연암 박지원의 글짓는 법》을 쓰신 동기는 무엇인가요?


"연암 박지원은 다산 정약용과 더불어 우리 옛 문인들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거론되는 인물입니다. 북학사상가이자 문화이론에 대한 훌륭한 학자로서 학계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죠. 그런데 그에 비해 문장가로서의 연암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야기되지 않았어요. 아마 20세기에 실학이 강조되면서 연암의 실학가로서의 면모만 부각시켰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저는 연암의 진가가 문장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문장가로서의 연암을 제대로 밝혀보고 싶었어요. 연암 글쓰기의 본질은 무엇일까? 연암이 정말 독보적인 문장가라면 어떤 과정을 거쳐 글을 썼을까? 오늘날의 글쓰기에도 연암의 글쓰기 방식이 활용될 수 있을까? 이런 점을 생각하면서 책을 썼어요."


연암의 글이 가진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연암의 글쓰기는 숨김의 미학을 지향해요. <호질> 같이 주제를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작품도 있지만 연암의 산문에는 대개 뭔가가 감춰져 있죠. 문학 속에 철학과 미학을 담아 논의를 끌고 가거든요. 그래서 처음 읽을 때는 어렵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그 속에 담긴 진의를 깨닫는 순간 글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와요. 또 독자에게 위로나 공감이 아니라 자각과 각성을 주어 새로운 세계로 안내해준다는 것도 큰 매력이에요."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처음 연암 박지원 연구를 시작하게 되셨나요?


"대학교 4학년 때 연암 박지원에 대한 수업을 들었는데, 그때 연암의 글을 보고 고전은 고리타분하다는 선입견이 완전히 깨졌어요. 현대문학보다 더 새롭고 신선했죠. 그때부터 줄곧 연암을 연구해왔어요. 최근 학부 시절 쓴 연암에 대한 독후감을 다시 읽어보았는데, 연암에 대한 내 관심이 이때부터 지금까지 쭉 이어졌구나 싶어서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물론 중간에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가진 적도 있고, 현재는 이익이나 박제가 같은 실학자들로도 연구를 확대해가고 있지만 20년 동안 제 연구의 중심에는 연암이 있었어요. 앞으로도 늘 같이 갈 수밖에 없고요.”


오랫동안 연암을 연구하셨으니 연암에 대한 생각이 더욱 각별해지셨을 것 같은데요.


“연암을 연구하면서 제 생각이 연암의 생각에 많이 감화되었어요. 연암의 사고방식을 닮아가려고 노력하게 됐고요. 연암이 저를 성장시켰고, 또 성장한 저로 인해 연암이라는 인간에 더욱 세상에 드러날 수 있게 됐죠. 연암이 저를 먹여 살리기도 하고. (웃음) 서로 상부상조하는 사이라 재미있어요.”

 

 


연암의 글은 고전을 답습하는 기존의 글쓰기 방식을 파격적으로 깨어버려서 많은 비난을 받았다고 하는데, 또 동시에 최고 문장가로 칭송받기도 했잖아요. 당대에 비판 받는 방식을 취하면서 찬탄을 받는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나요?


"비판 받는 방식을 취한 게 아니라 비판 받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해야 돼요. 어느 시대든 기존의 관습을 유지하려는 세력과 새롭게 나아가려는 세력은 늘 있잖아요. 당시에도 기존의 글쓰기 방식을 유지하려는 보수적인 사대부들과 새로운 글쓰기 방식을 취하려는 지식인 간의 대립이 있었어요. 물론 세력은 전자가 압도적이었죠. 연암의 새로운 형식과 내용은 기존 사대부들에게는 위험하고 배척되어야 하는 대상이었어요. 정조가 문체반정 때 <열하일기>를 지목하면서 문체를 타락시킨 장본인이며 도둑 중의 우두머리라고 할 정도였죠.


그런데 그것은 그만큼 <열하일기>의 영향력이 강했다는 말이에요. 그러니 새로운 글쓰기를 시도하려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연암은 지도자였고 환희와 찬탄의 대상이었죠. 또 보수적인 학자들 중에도 간혹 연암의 문장을 열린 시선으로 보고 인정하는 이들이 있었어요. 겉으로 인정하기는 어려워서 대체로 무시하긴 했지만요.”


책에서 연암의 글을 ‘생태 글쓰기’로 규정하셨는데요. 생태 글쓰기란 어떤 뜻이고 어떤 의의가 있나요?


"보통 '생태'라는 말을 자연과 비슷하게 생각하지만 자연과 생태는 많이 달라요. 생태 글쓰기란 단순히 자연을 이야기하는 글쓰기가 아니라 모든 존재는 근원적으로 평등하다는 세계관 아래 상생과 공존의 생각을 보여주는 글쓰기예요. 그 생각의 바탕에 자연과 사물을 관찰하고 교감하면서 얻은 통찰력이 자리한다고 보시면 돼요.


오늘날 우리 삶이 많이 편리해지고 물질적으로 풍족해졌지만 과연 행복한지는 의문이에요. 특히 사람들은 남과의 비교를 통해 행복감이나 만족감을 얻는 경우가 많은데요. 자본주의 사회에선 빈부차이가 워낙 크고,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비교를 하는 순간 상대적 박탈감에 사로잡히게 되죠. 그러면서 황폐해진 우리 마음이 오늘날의 글쓰기에서도 나타나고 있다고 봐요. 폭력적인 글쓰기, 건전한 비판이 아닌 감정적인 비방만 하는 글쓰기, 흑백논리에 빠진 글쓰기, 진실은 없고 무조건 이길 때까지 상대방을 물어뜯는 글쓰기가 횡행하죠. 저는 생태 글쓰기는 이런 폐단을 치유할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해요.


생태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나를 둘러싼 생명들을 꼼꼼히 관찰하고 교감하는 태도에요. 인간을 둘러싼 자연은 자세히 관찰하면 배울 것이 많아요. 연암의 생각을 빌려 말하자면 ‘자연은 창조와 변화의 공간이자 생의(生意)의 장’이에요. 생의는 각자 살아가는 뜻이 있다는 말이에요. 연암은 쓸모 없고 하찮게 여겨지는 것들이 오히려 더 의미 있고 가치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어요. 그리고 나를 둘러싼 사물이나 자연에서 얻은 깨달음이 인간을 변화시킨다고 했죠.


물론 자연에 국한할 필요는 없어요. 연암이 살던 시대 연암을 둘러싼 존재는 대부분 자연 사물이었지만 오늘날 우리 주위에는 문명의 도구들이 많죠. 이렇게 오늘날 나를 둘러싼 제반 환경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관찰해서 의미를 찾고 또 그것과 교감해서 얻은 깨달음을 우리 삶을 고치고 발전하는 데 적용시키는 것. 그게 제가 생각하는 생태 글쓰기예요."


현대 사회의 글쓰기 환경은 문자부터 매체까지 연암이 살았던 조선시대와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연암의 글쓰기가 어떤 점에서 현대인의 글쓰기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셨나요?


"과거와 지금 환경이 많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오늘날에도 많은 훌륭한 인문학자들이 연암을 독보적인 문장가, 최고의 문장가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아요. 연암이 글의 대상이나 주제를 ‘지금 여기’에서 찾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연암은 특정한 모범이나 기준을 본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밟고 있는 시공간에서 삶과 현실을 이야기하고자 했어요. 그 정신이 오늘날에도 그의 주장을 유효하게 만들고 있어요.


또 중요한 한 가지는 진실성이에요. 연암은 자기 생각을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하자고 주장했어요. 그 시대의 다른 문인들이 꼭 진실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겠지만 진실함에 대해 자각하지도 못했고 진실한 글쓰기의 필요성을 이야기하지도 않았어요. 과거의 훌륭한 고전들을 모방하고 따라가자고 이야기했죠. 하지만 연암은 고전이라고 불리는 작품 역시 쓰여진 당시의 삶과 생각을 다루고 있고, 현재의 삶과 현실을 진실하게 드러내면 그게 훗날에 고전이 된다고 주장했어요. 이런 연암의 정신이 그의 글에 담겨 있어요.
오늘날에도 글쓰기의 본질은 진실함에 있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글의 기교가 뛰어나도 진실함을 이길 수는 없어요.


그리고 연암은 학자 이전에 진정한 문장가였어요. 옛 문인들은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대부분 순수 문장가라기보다는 학자에 가까워요. 반면 연암은 순수한 문장가로서 글쓰기 자체를 전략적으로 인식했어요. 그 전략 하나하나가 오늘날의 글쓰기에도 잘 맞아 떨어진다는 거죠. 구체적인 사례는 제 책을 보셔야 될 것 같고요. (웃음)”

 

 


책에서는 연암의 글 중에서도 이 책에서는 <하룻밤에 강을 아홉 번 건넌 기록> <황금대기> <범의 꾸짖음> 세 작품에 특히 중점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주셨는데요. 이 세 작품을 선정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 세 작품은 당대에도 크게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고요. 특히 <하룻밤에 강을 아홉 번 건넌 기록>과 <범의 꾸짖음>은 오늘날에도 교과서에 많이 실려서 일반 대중에게 잘 알려진 작품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용을 새롭게 이야기함으로써 제가 연구한 내용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를 보다 많은 분들에게 평가받고 싶었어요. 또 많은 사람들이 아는 작품을 분석하면 연암의 글쓰기 전략을 보다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배워온 상식이란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고 싶었어요. 저는 이 책을 일선의 중고등학교 국어 선생님들이 꼭 읽었으면 해요. 학교에서는 <하룻밤에 강을 아홉 번 건넌 기록>은 ‘외물에 현혹되지 않는 삶의 자세’, <범의 꾸짖음>은 ‘위선적인 유학자에 대한 비판’을 다뤘다는 식으로 한정해서 가르치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작품을 새롭게 다른 관점에서 보고 연암의 글쓰기 전략은 그게 다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제 책을 보면서 교과서에 실린 것, 우리가 상식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것들이 정말로 다 맞는 것인지를 한번 생각해보셨으면 해요. 왜냐하면 그게 바로 연암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거든요."


책에서 "협력적인 글쓰기" 부분이 특히 눈에 띄었는데요. 다른 사람의 초고를 연암이 수정을 해서 발표를 했다고 하잖아요. 오늘날의 기준을 적용하면 표절이나 도용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또 오늘날 책을 출판할 때 저자가 쓴 글을 편집자가 교정 편집하는 과정과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협력적인 글쓰기란 어떤 것이고, 또 어떤 장점이 있나요?


“말씀대로 오늘날은 저자가 글을 쓰면 전문편집자가 다듬고 수정해서 더 좋은 책이 나와요. 편집자의 능력에 책의 질이 많이 좌우되죠. 그런 것도 일종의 협력적인 글쓰기라고 볼 수 있을 거예요. 사실 한 사람보다 두 사람이 모이면 더 좋은 생각이 나오는 건 당연하거든요. 위대한 사상가, 뛰어난 문장가도 자기 혼자만의 능력으로 되는 건 아니에요. 패러다임을 바꾼 위대한 생각도 이전의 많은 생각이 뒷받침되어 생겨나는 것이거든요. 다산도 많은 제자들과의 집체 작업을 통해 방대한 분량의 저술을 완성할 수 있었어요. 연암도 제자들과의 협력 작업을 통해 더욱 좋은 글을 쓸 수 있었고요.


또 연암은 지금 파고다 공원이 있는 백탑에 살던 시절 수많은 북학파 실학자와 함께 어울려 먹고 마시며 밤새 토론을 했어요. 일상사에서부터 나라의 문제, 제도, 예술 등 주제를 가리지 않았죠. 몇 년간 그렇게 생각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연암의 사상이 만들어졌어요. 글쓰기 전에 비슷한 목적이나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주제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 협력적인 글쓰기의 기반이라고 생각해요.


또 글을 쓴 다음 지인들에게 꼭 읽어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협력적인 글쓰기에요. 연암도 그렇게 했고요. 비판해주는 부분을 반영해서 다듬고 수정해나가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어요."

 

 


책이 생각보다 쉽게 읽히기는 했지만, 어렵게 느껴지는 단어나 생소한 개념도 있었습니다. 책이 다소 어렵다고 느끼는 독자들은 어떻게 읽어 나가면 좋을까요?


"이 책은 일반 독자들도 이해하기 쉽게 쓰려고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학술적 연구에 바탕을 두고 있어요. 그래서 실제로 읽다 보면 당연히 어려운 부분이 있을 수 있어요. 특히 전반부는 쉽게 읽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었지만 후반부에서는 학술적 성격을 유지하고자 했거든요. 내용이 조금 어렵다고 느끼신다면 전반부를 중심으로 읽으셔도 충분히 도움이 되실 거예요.


그런데 저는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에도 독자분들이 한번 도전해 보셨으면 해요. 복잡해 보여도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의외로 단순할 수 있거든요. 오늘날 독서의 문제가 너무 빨리 쉽게 읽으려는 경향이 아닌가 싶어요. 제 책도 천천히 읽으면 이해 못할 부분은 없어요. 내용 하나하나마다 진정성을 담아 썼으니까 책의 내용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으시면 우리나라 최고의 문장가를 더 깊이 알게 되고 지식 교양의 수준도 한층 높아질 거라 확신합니다."


연암 박지원은 유명하지만 <호질> 등의 일부 작품을 제외하고는 실제로 연암의 글을 읽어본 독자들이 많지 않습니다. 아직 연암의 글을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독자가 이 책과 함께 읽으면 좋을 책으로 추천하시는 것이 있다면?


"연암의 글을 알기 쉽게 제대로 설명해 준 책을 읽으시면 연암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텐데요. 연암의 산문을 제대로 읽고 싶다면 박희병 선생님의 《연암을 읽는다》와 정민 선생님의 《비슷한 것은 가짜다》를 읽어보세요. 연암의 산문을 맛깔스럽고 깊이 있게 분석한 책이에요. 반면에 원텍스트를 세련된 번역글로 읽고 싶다면 김명호 선생님의 《연암집》을 추천해요.


<열하일기>를 제대로 읽고 싶다면 김열조 선생님이 번역하신 《연암집》, <열하일기>의 재미를 느끼고 싶다면 고미숙 선생님의 《웃음과 역설의 시공간》을 읽어보세요. 또 연암의 대표작 100편을 뽑아 놓은 《지금 조선의 시를 쓰라》도 대중독자들이 읽기 좋아요."


글을 잘 쓴다는 것이 쉽지 않다 보니 글쓰기 자체를 어렵고 멀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 가져야 할 기본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생각부터 달라져야 해요. 글의 형식은 몇 주면 배울 수 있지만 글의 깊이나 수준은 단기간에 완성될 수 없어요. 남들과 똑같은 것만 경험하고 똑같은 생각만 쓰면 아무리 형식이 좋은들 진부한 글이 나올 수 밖에 없죠. 세상을 보는 눈은 다양한 경험을 해야 열릴 텐데요. 가장 좋은 건 여행이죠. 하지만 현실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게 어렵다면 독서를 많이 하세요. 독서는 직접 가보지 못한 세계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경험이에요.


그리고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다르게 보려고 노력하세요. 다르게 본다는 건 대상을 꼼꼼하게 관찰하고 교감하라는 거예요.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더라"는 유명한 말도 있잖아요. 예를 들어 학교에서 4년 동안 같은 과에 있던 사람에 대해 글을 쓰라고 했을 때 그냥 알고만 지낸 사람들에 대해서는 별로 쓸 말이 없을 거에요. 그런데 내가 관심을 갖고 교감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는 얼마나 쓸 말이 많겠어요. 글을 쓴다는 건 그런 거에요. 결국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내 주변의 흔하고 사소한 것들을 꼼꼼하게 관찰하고 교감에 이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연암 박지원의 글짓는 법》을 읽고 글쓰기 방법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도 좋지만 그 이상으로 연암을 통해 글이란 무엇인가, 글의 책임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는 계기를 얻으셨으면 해요. 단순히 연암은 어떤 문장가였는가 하는 지식의 발견에 그칠 것이 아니라 연암이 했던 고민을 지금 여기에서 나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암은 위대한 문장가 사마천이 지금 태어나더라도 나는 사마천을 본받지 않겠다고 말했어요. 그 말은 과거를 본받으려고 하기보다 지금 현실을 고민하고 개선하려고 노력하라는 뜻이라고 봐요.


글쓰기는 굉장히 즐겁고도 괴로운 작업이에요. 읽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하지만 그 안의 문제의식이 한없이 가벼워서는 곤란하죠. 우리 삶에는 공감과 힐링을 주는 글도 필요하지만 새로운 자각과 각성을 주는 글도 꼭 필요해요. 읽을 때 낯설 수도 있고 거북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그런 글들이 나를 성장하게 하고 남을 돌아볼 수 있게 만들죠. 연암의 글은 그런 자각과 각성을 주는 글이에요. 독자 여러분들이 이 책을 통해 연암의 글 짓는 법과 생각을 지금 여기에서 다시 생각하고, 좀더 멋진 글을 쓰고 멋진 생각을 할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