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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철학-함돈균> 내 머릿속에서 동네길이 지워지다니 내비게이션(navigation)은 본래 뱃사람들의 항해술을 뜻하는 말이다. 나침반과 지도, 해도(海圖), 별자리의 위치 파악 등이 이 항해술의 필수목록을 구성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항해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네비게이터(navigator), 즉 항해사의 지도 해석 능력이다. 지도에 ‘해석’이 필요하다는 말에 주의하자. 해석(interpretation)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실재(real)와 가상(simulation), 원본과 복사본 사이의 ‘차이’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둘 사이에 벌어져 있는 간극을 메우기 위한 기술이 해석이란 말이다. 전통적 항해술에서 당연히 이 간극은 엄청나게 컸다. 인간의 발품과 눈썰미만으로 만들어진 작은 종이그림과 실제 지형 사이의 간극을 생각해 보라. 내비게이션이란 말은 이제.. 더보기
<사물의 철학-함돈균> 퍼거슨의 축구공 무게 410-450그램, 직경 68-70센티미터의 길이를 가진 작은 구체가 직사각형 공간 안에서 거의 정지되는 시간없이 빠르게 움직인다. 이 사물은 자가동력기가 아니다. 움직이려면 외부로부터의 물리적 충격이 가해져야 하는데, 대체로 그 방식은 사람의 '발'로 구체에 힘을 가하는 것이다. ‘풋볼(foot ball)’ ‘축구(蹴球)’는 이 물리적 동인을 지시하는 직접적 표현이다. 축구공이 어느 방향으로 튈지 알 수 없다고 말하지만, 이 사물의 물리적 운동 방식만큼이나 단순한 것도 별로 없다. 땅으로 굴러다니거나, 땅 위로 튀어 오르거나, 기껏해야 사람의 머리 몇 개 높이 위로 날아오를 뿐이다. 이 동선은 아무리 멀리 가봐야 가로 105미터, 세로 68미터 내외의 직사각형, 시간적으로는 90분의 한계를 벗어나.. 더보기
<사물의 철학-함돈균> 욕망이 옷이 된다면 최근 개봉한 블록버스터 영화 `아이언맨3` 여주인공(귀네스 팰트로)이 시사회 때 입은 복장이 화제다. 그녀는 어깨선 아래로 등과 허리와 엉덩이 일부, 허벅지와 다리까지 훤히 비치는 드레스를 입었다. 속옷은 물론이고, 때로는 은밀한 속살까지 투명하게 다 보인다고 하여 일명 누디룩(noody look)으로도 불리고, `시선이 관통한다`고 해서 `시스루(see-through)`라고도 불린다. 시스루라는 이름에 걸맞은 옷이 되려면 애초에 속이 잘 비치는 `섬세한` 옷감을 사용해야 한다. 마치 옷이 두께를 가지고 있지 않은 듯 매우 얇게 재단돼야 한다. 특이한 건 이 옷이 몸매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스키니`와 비슷하지만, 속살에 찰싹 달라붙지는 않는다는 점에서는 그와 정반대 스타일이라는 점이다. 시스루..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