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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철학- 함돈균> 포스트모던 노트 세계 도시인의 책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사각형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컴퓨터도 노트도 책도 아니다. 바로 포스트잇(Post-It)이다. 아마 당신의 컴퓨터 모니터 위에, 벽면 여기저기, 책갈피 사이에도 매우 정확하게 절단된 아주 작은 형형색색 사각형이 즐비하게 `붙어` 있을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 작은 `사각형 노트`의 위치가 내일은 전혀 다른 곳, 예컨대 사장의 캘린더라든가, 부모님 집의 냉장고 위로 `이동`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포스트잇의 형상과 출현은 지식과 진리, 문명의 현실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있다. 그것은 불변적ㆍ고정적 세계에서 가변적ㆍ유동적 세계로, 중심 있는 세계에서 중심 없는 세계로의 전환을 암시한다. 원래 이 작은 사각형 노트는 스카치테이프로 유명한 미국 3M사의.. 더보기
<사물의 철학> 자전거의 바퀴살은 왜 비어 있을까 꽃샘추위가 반짝 기승을 부렸지만 봄을 기다리는 마음까지 막을 수는 없다. 도시의 낯빛은 새로운 계절의 바람 냄새와 햇살을 느끼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자전거들로 인해서도 화려하게 변한다. 거리를 달리는 자전거를 볼 때마다 인간이 만든 가장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기하학의 기술적 구현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전체를 이루는 뼈대와 타이어와 톱니 체인이 맞물려 생기는 움직임은 점과 직선과 삼각형과 원이 협력하여 만드는 기하학의 율동이다. 유클리드 기하학의 공리와 삼각형에 대한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보이지 않는 그 추상적인 원리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저 사물의 경쾌한 운동을 지속시키는 원동력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의 기반이며, 점은 선의, 선은.. 더보기
<사물의 철학-함돈균> 누가 가장 잘 숨었을까 세 여자가 있다. 온몸과 머리와 얼굴까지 옷가지로 두른 채 오직 눈만 밖으로 내놓은 서아시아 지역 한 여자. 체코의 한 고성에서 열린 가면무도회에서 춤추고 있는 마스크를 쓴 여자. 비키니에 샤넬 선글라스를 끼고 일광욕을 즐기는 마이애미 해변의 한 백인 여자도 있다. 이 셋 중에 가장 자신을 잘 숨기고 있는 여자는 누구일까. 모든 `자기 은폐`의 본질은 이를 `행동의 자유` 문제와 관련하여 이해할 때 잘 드러날 수 있다. 자기를 잘 숨길수록(숨을수록) 그 자신은 행동의 자유가 커질 것이다. 예컨대 도깨비감투나 투명인간 같은 자기 은폐에 대한 이야기는 규율과 금기를 넘어서려는 인간 행동(자유)의 심리학을 암시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는 첫 번째 여자가 가장 자신을 못 숨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