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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행성 이야기

<사물의 철학-함돈균> 아이로 돌아가려는 가방

 

우울한 일이 많았던 지난겨울, 겨우 찬바람에 봄햇살이 섞여 들어오기 시작할 즈음 돌연히 `백팩(backpack)`을 하나 샀다. 그날 이후 양복을 입고서도 양어깨에 백팩을 메고 출근한다.

백팩은 가방인가? 물론 패션 피플들은 이런 질문조차 상투적이라고 여길 것이다. 그들에게 그건 단순한 가방이 아니라 `패션`이므로. 그러나 필자에게는 백팩이 단순한 가방도 패션도 아니라면? 사실 백팩을 `가방`이라고 한다면 이것만큼 익숙하고 흔한 것도 없다. 모두들 유치원,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에 들어가서까지 이런 가방을 메고 다니지 않는가.

그러나 그건 백팩이 아니다. 그냥 `책가방`이다. 책가방이라고 하면 으레 등에 메는 가방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기능적인 이유 때문이다. 신체가 충분히 튼튼하게 발달하지 못한 어린이들에게 뒤로 메는 가방은 양어깨로 책 무게를 분산시킨다. 고등학생이 되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때부터는 `짐` 무게가 급격히 늘어난다. 이제 가방은 `배낭`이 된다. 그런 점에서 텐트까지 짊어진 히말라야 원정대의 저 무거운 배낭 역시 백팩은 아닌 셈이다.

뒤로 메는 가방을 가방이 아니라 `백팩`으로 만드는 비밀은, 실은 백팩 자체가 아니라 그걸 멘 사람의 전체적 의상스타일에 있다. 백팩의 결정적인 코디스타일은 양복이거나 여성정장이다. 나이가 많고, 게다가 사회적 지위까지 높다면 금상첨화다. 백팩의 본질은 (어른)사회의 관습적 시선과 규정적인 통념에서 일탈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어 한쪽 어깨에 멨던 서류가방이나 손에 들었던 핸드백을 `(어린)학생들처럼` 다시 뒤로 멨을 때 발산되는 엔도르핀, 무언가를 등에 멨는데도 오히려 몸이 가벼워지는 무중력감은 다 이와 관련이 있다.

이 일탈의 본질은 `아이`의 에너지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니체는 모래밭에 애써 지어 놓은 모래집을 스스로 무너뜨리면서도 즐거워하고 또 새로운 모래집 짓기를 반복하여 즐기는 `아이`를 무거운 의무감과 질서의 `가방`을 멘 짐진 낙타나 자유로운 용기를 소유한 사자보다도 진화한 인간 유형이라고 말했다. `위버멘시(Ubermensch), 즉 `초인`이라고 불린 이 인간형의 핵심은 유희적 에너지, 규정된 질서를 무너뜨리는 창조적 일탈과 자기긍정이다.

50대 후반인 대기업 CEO나 정년퇴임을 앞둔 교수가 단정한 슈트에 백팩을 메고 20ㆍ30대 직원과 학생들이 앉아 있는 회의실 또는 강의실로 들어오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그 순간 직원들과 학생들은 오히려 자기가 지금 메고 있는 게 백팩이 아니라 실은 `가방`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함돈균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 매일경제 & mk.co.kr, 2013.5.3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