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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행성 이야기

<사물의 철학-함돈균> 신이 모습을 드러낸다면

 

 

늘 우리 곁에 있으나, 우리가 이 사물의 존재를 비로소 인식하게 되는 것은 어둠이 찾아온 다음이다. 어둠과 반대 속성인 빛을 품고 있지만 어둠에서만 나타나는 빛이라는 역설을 동반한다. 바로 가로등이다.

가로등이 특별하게 여겨지는 때도 그 속성과 관련이 있다. 인적이 끊긴 어둠 속 섬뜩한 골목길, 방향을 제대로 알 수 없는 낯선 지역을 어둠에 갇혀 운전하고 있을 때를 떠올려 보라. 그제야 우리는 이 작은 빛이 친구이자 보호자이자 먼 바다를 건너는 항해사의 등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어둠 속에서 드러나는 이 빛의 양은 많지 않다. 사방을 덮고 있는 밤의 공간적 넓이와 시간적 깊이, 즉 어둠의 총량에 비해 가로등 빛이란 극히 미미하다.

가로등의 역설은 여기에 있다. 빛은 그 실낱같은 희망의 가능성으로 오히려 어둠 속에서 존재를 분명히 드러낸다는 사실 말이다. 빛의 진정한 잠재력은 어둠을 일제히 소거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무언가`가 이 어둠 속에서도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를 확인하고 예감하는 데 있다.

`플라톤의 동굴`에서 이 세계를 유일한 세계로 알며 살던 죄수가 다른 삶이 존재할 수 있음을 자각하고서 동굴 밖으로 나갈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어둠의 틈으로 새어 들어오던 이 머리칼 같은 빛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가로등은 가늘고 긴 몸통 위에 빛이 발산되는 머리가 밑으로 구부러진 형상을 하고 있다. 즉 가장 전형적인 가로등은 빛의 얼굴을 한 어떤 존재가 마치 땅을 굽어보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굽어보는 얼굴의 빛은 아래로, 그러니까 낮은 자리로 발산되며 가능한 한 제 주위를 평등하고 넓게 비추려는 듯하다.

새로 선출된 교황 프란치스코 세족식이 화제였다. 가톨릭에서 2000년 동안 진행돼온 세족식 역사상 처음으로 `아이` 12명을 선택해서 발을 닦아주고 거기에 입맞춤했다. 이들은 모두 소년원 재소자였으며 여자아이와 이슬람 교도도 있었다. 아이, 여자, 이슬람 교도, 전과자는 오늘날 문명 세계에서 가장 힘없는 존재들이다.

새 교황은 취임식에서 교황이 되는 게 아니라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제자가 되기 위해 그는 가장 `낮은 자리`로 임하여 그곳을 섬기는 자가 되겠다고 했다.

어둠이 가득한 지상에 신이 잠시 모습을 드러낸다면 어떤 방식일까. 새 교황 행보에서 가로등을 본다. 언뜻 거기에서 신의 실루엣을 본 듯도 하다.

[함돈균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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