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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행성 이야기

<한국문학과 민주주의> 문화일보

문화일보

[문화] 게재 일자 : 2013년 06월 03일(月)
민주주의란? 문학에게 묻다
14명 집필 연구서 ‘한국문학과 민주주의’ 출간 요즘미투데이공감페이스북트위터구글
‘문학으로 민주주의를 읽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지만 막연하게 다가오기도 하는 ‘민주주의’에 대해 문학을 통해 고찰한 연구서가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최근 출간된 ‘한국문학과 민주주의’(소명출판)다. 국문학자·문학평론가 등 14명의 필자가 쓴 글을 모은 책은 195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는 시와 소설 등 문학 작품들을 통해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어떻게 전개되고, 받아들여졌는가를 고찰하고 있다. 즉,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문학을 통해 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한국문학과 민주주의’는 신동엽 시인의 시를 통해 민주주의란 무엇인지를 살피는 데서 시작한다. 한국사회에 구현된 민주주의 형태와 신동엽 시에 나타난 민주주의 미학을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1960년대 신동엽 시가 예견한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의 모습을 펼친다. 또한 김수영 시인이 4·19혁명에서 느꼈던 ‘작열’과 그 이후 배운 ‘사랑’, 그리고 김수영 시의 언어를 통해 민주주의가 ‘미완의 혁명’이자 ‘영구 혁명’이라고 말한다.

흔히 대중소설로만 치부돼 왔던 정비석의 신문소설 탐구는 매우 흥미롭다. 이선미 경남대 교수는 ‘정치혐오의 문화적 기원과 신문소설의 여론 민주주의’란 제목의 글을 통해 1950년대 정비석의 신문소설이 ‘여론 민주주의’를 담당했다고 주장한다. 이 교수는 “1950년대의 정비석은 지금 우리 시대의 미디어 상황과 서사의 대중적 존재방식과 대비시켜 생각해보면, 팟 캐스트라는 인터넷 방송을 통해 정치를 야유하고 비판하는 김어준의 방식과 가장 비슷한 것일지도 모른다”며 “야유와 비아냥으로 권위적인 주체를 풍자하고 희화화하면서 세태를 비판하고 민주주의를 사유하게 하는 비판적 여론화 방식과 비슷한 점이 있다”고 분석했다.

정비석은 세간의 논쟁을 불러일으킨 ‘자유부인’ 등 수많은 장편소설을 써냈지만 자신의 장편소설 중 어떤 작품도 정전(正典)의 대열에 진입시키지 못한 작가다. 즉 정비석의 소설은 자극성 위주의 대중소설로만 치부돼 왔다. 하지만 이 교수는 “정비석의 신문소설은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의 대립, 혹은 새로운 것이 낡은 것을 재구축하는 과정을 보여준다”며 “정치가 개인들의 삶에 세세히 관여하는 민주주의적 사회에서 다양한 담론 주체들이 이전투구식으로 갈등하는 양상을 재현함으로써 전 사회적으로 공감하고 있는 정치 혐오의 감정을 주조하면서 여론을 형성했다”고 평가했다.

박민규·윤고은·편혜영·김성중 등 2000년대 작가군의 작품을 분석한 문학평론가 소영현의 글도 눈길을 끈다. 소 씨는 ‘데모스를 구하라 -한국소설의 종말론적 상상력 재고’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인류 이후’를 상상하는 작품경향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2000년대 중반 이후로 한국소설에서 미래와 희망에 관한 이야기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며 “한국소설에는 (세계의) 소멸의 상상력과 (자아의) 퇴행의 이미지 그리고 (사회의) 희망 없음에 대한 절망감과 허무의식이 넘쳐난다”고 진단했다.

소 씨는 이어 “2000년대 이후로 점차 한국소설의 주인공이 되고 있는 좀비, 외계인, 동물, 로봇, 시체 등의 ‘비인간’의 형상들은 (…) 자유와 평등의 가치로 구축된 시민사회의 붕괴에 대한 우회적 포착”이라며 “‘인류 이후’를 상상하는 종말론적 서사는 민주화의 역설이 야기한 사회현상에 대한 문학적 징후 포착이자 민주주의 퇴행에 대한 사회 불안의 문학적 표출”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소설이 보여준 종말론적 상상력은 인류와 인간의 범주뿐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낸 사회의 유용성에 대해 재점검의 시간이 도래했음을 낯선 방식으로 환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
e-mail 김영번 기자 / 문화부 /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