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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행성 이야기

<사물의 철학> 텐트- 자연에 세운 일인용 도시

 

 

 

숲 속의 밤이다. 불과 1㎜도 안 되는 얇은 천으로 만든 작은 집을 짓고 당신은 그 안에 누워 있다. 혼자일 수도, 당신 아이가 옆에 자고 있을 수도 있다. 어떻든 간에 도시인인 당신에게 이 밤은 훨씬 더 어둡고 길게, 그리고 깊게 지각된다. 당신은 흔들리는 얇은 `벽`을 통해 공중에 바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지붕` 위로 떨어지는 무언가의 소리에 대한 예민한 증폭을 통해 빗방울과 나뭇가지와 벌레들이 이 우주의 일원이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피부로 느낀다.

캠핑을 모티프로 한 방송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커피집이 생겨나듯 동네마다 아웃도어 매장이 생겨나고 있다. 평생 도시인이었던 당신도 이제 주말에는 `자연`으로 떠난다. 캠핑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는 `텐트`다. 모양과 용도와 재질 등에 따라 종류는 다양하다. 하지만 어떠한 텐트도 얇은 천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만은 공통적이다. 캠핑을 통해 자연과 `직접적인` 교감이 가능한 까닭도 텐트가 `얇은 벽`으로 만든 `집`이라는 사실에서 나온다.

하지만 제 아무리 고성능 재질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이 `벽`은 외부에서 침입하기 손쉬운 `천 조각`에 불과하다. 콘크리트 성벽으로 높이 둘러쳐져 있고, 비밀번호를 장착한 몇 개 관문을 거쳐야 겨우 들어갈 수 있으며, 사설 보안업체까지 든든히 지키고 있는 고층 아파트를 생각한다면 이 연약한 벽에 의지해 낯선 어둠 속에 집을 짓고 주말마다 혼자 또는 가족과 잠을 자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꽤 놀라운 일이다.

이 새로운 현상은 이율배반적이다. 그것은 일차적으로(표면적으로) 콘크리트에 갇힌 도시적 일상에 나타난 미세한 `균열`이다. 하지만 캠핑은 부처의 출가도, 도연명의 `귀거래(歸去來)`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캠핑 열풍에서 텐트는 산악인의 바람막이도, 유목민의 천막도 아니다. 그것은 건축과 해체와 이동이 자유로운 도시인의 집이다.

이 가볍고 자유로운 집은 특별한 연고 없이 우발적으로 선택되며 다시 흔적 없이 지워진다. 마치 한 페이지와 다른 페이지가 인과성 없이 이어지며 여행하는 인터넷과 흡사하다.

 

오늘날 캠핑이 휴대폰과 이메일과 페이스북으로 도시 세계와 실시간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그건 텐트가 자연으로 귀의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연에 건설된 도시인의 일회용ㆍ일인용 도시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이 얇은 벽을 두른 낯선 숲 속의 밤도 더 이상 두렵지 않은 것이다.

[함돈균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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