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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행성 이야기

<사물의 철학> 쇼핑카트 - 권력의 사각 프레임

 

 

 

아내와 함께 쇼핑카트를 밀면서 `산책`을 즐긴다. 당신은 입가에 웃음을 띠면서 아내와 카트를 번갈아 쳐다본다. 흡사 곧 태어날 아기를 태운 유모차를 끄는 젊은 아빠 같은 모습이다.

신도시에 사는 당신 집 주위에는 다른 대형마트가 두 개 있다. 어디로 산책을 가든지 커다란 사각형 철제 수레를 미는 곳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이 사물은 제 안에 견고하고 넓고 깊은 빈 공간을 열어 놓음으로써 어떤 물건이라도 무사히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는 안도감을 준다. 콘플레이크, 생선, 샴푸, 신발, 자동차용품과 조립용 의자까지 빼곡히 담겼다. 무엇이든 수용하는 무차별성이 이 사물의 `톨레랑스(관용)`를 보여준다.

180도 자유자재로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바퀴는 유연성을, 브레이크가 없으면서도 원하는 지점에 정확히 정지하고 뒤로 밀리지 않는 감각은 예민함과 뚝심을 드러낸다. 그래서 당신은 또다시 어떤 물건을 향해서라도 쉽고 빠르고 우아하게 다가갈 수 있다.

쇼핑카트는 생명체처럼 자라며 진화하고 있다. 사각형은 커지고 더 튼튼해지며, 투박했던 인상은 갈수록 부드러워진다. 손잡이에 항균제를 하고, 그립감이 좋은 플라스틱 외모를 한 채, 구매자 주변에 있는 추천상품 정보를 실시간으로 조회해 주는 태블릿컴퓨터가 부착된 카트도 등장했다. 관용과 유연성에 `건강`과 `똑똑함`까지 갖춘 것이다.

쇼핑카트를 단지 커다란 장바구니라고 여기는 것은 오해다. 오늘날 이 사물은 일주일마다 반복되는 도시 산책의 친절한 동반자요, 아직 아기가 없는 당신에게는 유모차를 대신한다. 이 사물은 소중히 보듬어야 할 일용할 양식과 일상을 당신 차까지 가이드한다.

대형마트는 상점 주인과 얼굴을 대면하지 않는 익명성, 농산물(생물)에서 가전제품(무생물)에 이르기까지 일상 자체를 통째로 옮겨놓은 완벽한 재현성, `1+1` 형태 덕용포장의 미덕까지 갖춘 도시의 인공화된 `자연`이자 `학교`다. 거기에 놓인 카트 내부의 빈 사각형은 무엇이든 가득 채우는 게 미덕이라는 공리주의를 가르친다. 학생이 되거나 욕망의 해방자가 되거나 혹은 금욕적인 수도사가 되거나, 어쨌든 이곳은 주체의 의지를 시험하는 장소다.

니체나 푸코 같은 철학자는 권력이란 무언가를 강제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전근대 사회의 권력은 `하지 마라`(금지)고 명령했다. 오늘날 권력은 `무엇이든 행하라`고 권유한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 견고하고 부드러운 사각 프레임이 곧 권력이다.

 

 

[함돈균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매일경제신문 2013.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