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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행성 이야기

<사물의 철학> 우산 - 비오는 날의 선물

 

 

 

`머피의 법칙`이다. 장마가 시작된다는 일기예보에 일주일 내내 가방에 넣고 다니던 우산을 무거워서 놔두고 왔다. 한 주 내내 땡볕만 내리쬐더니 하필 우산이 없는 지금 퇴근하려던 참에 비가 내린다. 회사와 지하철역 사이 거리, 도착역에서부터 집까지의 거리를 떠올리면서 낭패감에 젖는다. 아무래도 비를 맞고 가기에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단돈 5000원을 주고 사는 데에도 망설여지는 게 바로 우산이다.

우산은 높은 `집중력`을 발휘하는 사물이다. 공중을 향해 이 사물을 들어올리자마자 하늘에는 방사형의 가는 뼈대와 작고 둥근 천으로 이루어진 움직이는 지붕이 마술처럼 펼쳐진다. 그 지붕은 오직 비오는 `순간에만` 유효하며 `나에게만` 봉사한다. 이 사물이 두 사람의 공동 지붕이 되는 경우도 가끔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두 사람이 어떤 사이건 간에 이때만큼은 연인처럼 `하나`가 되어 보폭을 맞추지 않을 수 없으니까.

우산은 절박한 순간에 100% 효용성을 발휘하다가 다른 때에는 사용가치가 제로가 되는 이상한 사물이다. 그것을 사용하지 않을 때 이만큼 휴대가 거추장스러운 사물도 많지 않다. 망설이다가 빗길을 뛰어가기로 결심한다. 회사 문을 막 나서려는 순간, 뒤에서 누가 부른다. "어이 이 대리, 비 맞지 말고 이 우산 가져가. 난 차타고 가면 되니까."

이 순간 그 말이 그렇게도 고마울 수가 없다. 생각해 보니 전에도 어떤 동료에게 우산을 빌린 적이 있다. 나도 한 친구에게 우산을 빌려준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동료도 나도 우산을 돌려받지는(돌려주지는) 못했다. 화창하게 갠 다음날, 어제 빌린 우산을 들고 올 생각을 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사물은 사실상 돌려받을 생각을 하지 않고 주는 `선물`에 가깝다. 거의 모든 이의 집에 타인의 손때가 묻은 우산이 적어도 하나씩은 존재하는 이유다.

저 유명한 `자본론`의 저자는 `주고받는다(give and take)`는 세태를 `등가교환` `교환가치`라는 경제학 용어로 번역하고, 이것이야말로 현대의 본질적 속성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거꾸로 말한다. 공동체에 무언가 `반짝이는 풍경`이 생겨나려면 대가를 바라지 않는 증여, 그러니까 우리 중에 누군가 한 사람쯤은 `착한 바보`가 돼야만 한다는 것이다.

 

오늘도 갑자기 비가 내린다. 동료에게 건네는 이 무상의 선물이 그와 당신 모두를 기쁘게 하지 않는가.


[함돈균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매일경제신문 2013.7.5